김은중 프로필 (축구 선수 코치 감독) :: 외시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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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팀 선수 프로필

김은중 프로필 (축구 선수 코치 감독)

by 두용이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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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중 프로필 (축구 선수 코치 감독)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U-20 National Football Team
이름 김은중金殷中 | Kim Eun-Jung
출생 1979년 4월 8일 (44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신체 184cm, 78kg, 280mm, A형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대전 시티즌 (1997~2003)
베갈타 센다이 (2003 / 임대)
FC
서울 (2004~2008)
창사 진더 (2009)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0~2011)
강원 FC (2012~2013)
포항 스틸러스 (2013 / 임대)
대전 시티즌 (2014)
코치 대전 시티즌 (2014 / 플레잉 코치)
AFC
튀비즈 (2015~2017)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17~2020)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21 / 수석 코치
)
감독 AFC 튀비즈 (2017 / 감독 대행)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22~ )
국가대표 15경기 5골 (대한민국 / 1998~2004)
종교 불교
학력 서울성내초등학교 (졸업)
동북중학교 (졸업)
동북고등학교 (명예졸업)
병역 면제
등번호 대전 시티즌 - 18
베갈타 센다이 - 9
FC
서울 - 22,18
제주 유나이티드 - 18
강원 FC - 18
포항 스틸러스 - 10
MBTI ENFJ

 

 

"대전은 첫사랑이자 끝사랑이다"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 별명은 샤프, 독안룡.

 

중학교 시절 공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 상태에 이르렀으나 본인의 노력과 의지로 축구 선수에게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좁은 시야를 극복하고 K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 되었다.

 

최은성, 이관우 등과 함께 대전 시티즌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 중 한 명이다. 특히 김은중은 선수 생활의 시작과 끝을 모두 대전에서 보냈으며 대전 구단 역사상 두 번 기록된 모든 우승 당시 기여한 선수다. 무엇보다 대전 팬들에게 김은중이 차지하는 상징성과 의미는 매우 크다. 하지만 동시대에 활약했던 다른 선수들의 그늘에 눌려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팀과 동료를 위해 헌신하는 플레이로 대전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의 상징 같은 등번호인 18번을 주로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전성기를 이끌며 팀의 레전드 반열에 올랐고 주목 받기 시작했다.

 

대전 팬들에게는 레전드 플레이어로 남아있지만 아쉽게도 원 클럽 플레이어는 아니다. 클럽 경력으로만 보면 저니맨에 가깝다. 2003년 한 시즌간 일본 생활을 거친 후 FC 서울로 이적했으며 중국으로 갔다가 제주 유나이티드로 온 2010년에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지기 시작했다. 결국 2010K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이후 강원 FC로 이적했다가 임대 신분으로 포항 스틸러스에 갔는데 포항에서 프로 커리어 사상 첫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 대략 11년 만에 대전 시티즌으로 돌아와 대전에게 두번째 우승 트로피와 1부 리그 승격을 선물한 뒤 팬들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은퇴하며 대전의 위대한 전설로 남았다.

 

지도자로는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과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으며 2022년부터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2023 FIFA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에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며 지도력 역시 입증해나가고 있다.

 

 

클럽 경력

 

https://youtu.be/n0ym_gqfdx8

 

국가대표 경력

그는 신태용과 함께 대표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선수였다.

 

김은중이 자신의 대표팀에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던 것은 1998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였다. 당시 이동국과 위력적인 투 톱을 이루어 공격진을 이끌며 대한민국에게 8번째 우승을 선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9년에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1999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나이지리아에도 이동국과 함께 주전 공격수로 참가했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이후 수많은 축구 팬들이 이동국-김은중 투톱의 재현을 염원했지만 현실에서는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다. 양 선수의 소속팀과 대표팀 활약 시기가 계속 엇갈렸다. 그나마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호흡을 맞춘 정도고 성인연령대 국가대표팀에서는 2004년도 바레인과의 평가전에서 함께 선발출장해서 2:0승리를 이끌었지만 이게 국대에서도 마지막이었다. 참고로 이 경기는 대한민국 감독으로서의 본프레레의 데뷔전이었다. 대한민국판 꿈의 투톱이자 영혼의 투톱이었다.

 

그나마도 당시 대표팀이 3-4-3포메이션을 주로 사용, 원톱 자원인 이동국 김은중이 같이 뛴 일은 드물었다. 주로 이동국이 선발로 투입되고 경기 양상에 따라 김은중이 교체 투입되는 수순. 거기에 서로 교체된 경우도 있어 아시안게임 6경기 중 두 사람이 같이 뛴 시간은 146분에 불과하다. 꿈의 투톱이 꿈의 투톱인 이유는 역시 AFC U-19 대회 한일전일 것이다. 예선에서 한 판, 결승에서 한 판 붙었는데 이동국과 김은중이 두 경기에서 서로 한 골씩 사이좋게 뽑으며 연거푸 2:1 승리를 거뒀다. 특히 마지막 결승전 김은중 패스 후 이동국 터닝슛으로 일본이 가라앉아 버렸다. 세간의 평가만이 아니라 이동국, 김은중 두 사람 모두 종종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서로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고는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프로팀에서 모두 이 둘의 재결합은 이뤄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춘 바레인전도 이동국이 골을 넣으며 승리는 했지만 뭔가 두 사람끼리 호흡으로 탁! 하고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없어서 아쉬웠던 경기였다.

 

A대표팀으로 올라오면서 왼쪽 눈의 실명으로 인해 대표팀에 차출되는 기회가 적어지게 된다. 히딩크 감독의 후임으로 대표팀을 맡았던 움베르트 쿠엘류 감독은 김은중을 대표팀에 자주 뽑았지만 그 이후에는 김은중이 대표팀에서 얼굴을 비치는 일은 없었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 및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대표팀 참가, A매치 15경기 5골이 그의 국가대표팀 경력이다.

 

은퇴

한편 김은중이 은퇴를 하면서 대전 시티즌 구단은 2015년 김은중이 코치로 부임한 AFC 튀비즈를 초청해 It's Daejeon 축구대회를 개최하면서 김은중의 은퇴식을 개최하려 했지만 메르스 여파로 취소되면서 1년 연기되어 2016624일 개최되었다.

 

이날 경기에서 김은중은 전반전에는 튀비즈의 코치 신분으로 튀비즈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전반 종료 후 쉬는 시간에는 김은중의 영구 결번 제막식이 이어졌으며 김은중의 등번호 18번은 18년 동안 임시 결번으로 남게 됐고 팬들은 결번에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지도자 경력

AFC 튀비즈 코치, 감독 대행

2014 시즌을 끝내고 현역 생활을 지속할 것인지 은퇴할 것인지에 대해 대전 팬들의 관심이 쏠렸으며 일본 전지훈련에 불참하자 대전 팬들이 사비를 모아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사서 김은중에 보낼 만큼 대전 팬들은 김은중이 대전에 남아서 좀 더 뛰어주기를 바랬으나 결국 은퇴를 선언해 벨기에의 AFC 튀비즈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전의 팬들에게는 '언젠가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또 다른 기쁨을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KBS 2TV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 꽤나 장기간 벨기에 전지훈련 특별 코치로 합류해 잘 지내는 모습을 비추고 있다.

 

2016-17 시즌 막판 레지 트루아 감독이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고 팀 분위기를 잘 추스리며 가까스로 3부 리그 강등을 막았다.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710월 김봉길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부임하며 대전 시티즌 감독 부임은 다음으로 기약하게 되었다.

 

한편 과거 대전 시절 동료였던 공오균과는 코치로서 다시 한 번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이후 김학범 감독 부임 이후에도 코치직을 유지한 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으며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였다. 아쉬운 점으로는 연장 전반 13분여째 일본의 TATSUTA선수의 부상으로 장내가 어수선할 즈음 황희찬 의 두 번째 득점 리플레이 장면에서 이민성 코치과 함께 선수를 독려해주는 샷이 나왔으나 도쿄 대첩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뤄서인지 배성재 캐스터에게 호명이 되질 못했다. 연장 후반 시작 전 대표단 단합샷에선 김학범 감독을 필두로 이민성 코치와 함께 중계 화면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2020P급 강습회에 참가한 것이 확인됐다. 2021년 이민성 수석 코치가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수석 코치로 승진했으며 2021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는 대표팀을 지도했다.

 

올림픽 종료 후 김학범이 물러나고 황선홍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본인도 코치직을 그만두었다.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215일 대한축구협회 감독선임위원회는 김은중 전 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대한민국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김은중 본인에게는 첫 정식 감독 커리어다.

 

계약 기간은 20221월부터 2023 FIFA U-20 월드컵 본선까지며 만일 U-20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 계약은 중도에 해지된다.

 

202331일부터 U-20 월드컵 진출권이 달린 2023 AFC U-20 아시안컵 우즈베키스탄 대회에 나선다. 8강전에서 중국을 격파함으로써 U-20 월드컵 진출권을 획득했다.

 

2023 FIFA U-20 월드컵 F조에서 프랑스를 꺾는 등 12무 조 2위로 3회 연속 토너먼트 진출을 이끌어냈다.

 

62일 에콰도르와의 16강전에서 이영준의 선제골에 힘입어 32로 승리하고 2회 연속 8강에 진출했다.

 

65일 나이지리아와 가진 8강전에서 연장 전반 5, 이승원의 코너킥을 최석현이 헤더골로 연결해 2회 연속 4강에 진출했다. 경기 후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다가 선수들의 물벼락 세례에 웃음기를 되찾은 모습을 보였다. 영상 이제 한국 시간으로 202369일 금요일 새벽 6시 이탈리아와 4강전을 치렀다.

 

한편 옆나라 일본에서는 모리야스 하지메 전술의 매운 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하고 있다.

 

69일 이탈리아와의 4강전에서 체사레 카사데이에게 선제골을 내줬고 이승원이 패널티킥 골로 동점을 만들었으나 시모네 파푼디에게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내줘 결국 1:2로 패배하고 3, 4위전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3위 결정전 상대는 우루과이에게 패한 복병 이스라엘이다.

 

612일 이스라엘과의 3위 결정전에서 선제골을 내줬으나 이승원의 동점골로 1:1 동점을 맞췄다. 그러나 후반전에 체력이 방전된 탓에 2골을 내리 헌납하면서 1:3으로 패배해 최종 순위 4위로 대회를 마쳤다.

 

 

플레이 스타일

프로의식이 뛰어나다. 성실한 플레이를 하고 동료를 잘 이끌며 투지가 좋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PK 기계'라는 별명답게 페널티킥도 무척 잘 찬다. 활동량은 남부럽지 않고, 스트라이커로서 근거리에서 위치선정도 좋고, 중거리슛도 뛰어나지만 박스 근처에서의 결정력이 유독 좋았던 선수이다. 박스 근처에서 강하게 차는 슛보다 정확하게 차는 슛의 빈도 수가 더 많았다. 대신 동료를 이용하는 노련한 플레이에 능하다. 최전방에서 활약할 수도 있고, 약간 내려온 위치에서 연결하는 역할도 충분히 소화 가능하다. 노련해서 그런지 헤딩 경합과 같은 사항에서 자잘한 반칙 유도라든가 라인 부근에서 상대편 맞고 나가서 공격권 얻어내는 것 등등에도 능하다. 피지컬이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꼼수나 기술적 능력을 바탕으로 타겟 플레이도 훌륭하게 소화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원톱으로서의 박주영의 대두 이전까지는 00년대 중반 조재진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현대적인 원톱형 스트라이커였다.

 

다만 내려온 위치에서 연결하는 역할을 할 경우 외눈인 게 아쉽다. 박스에서 멀리 떨어져서 공간감이 필요한 정교한 패스를 할 경우 타이밍은 환상적이지만 동료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강 감으로 찍어서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박스 근처의 약한 패스는 경험도 있고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지만 넓은 공간을 정교하게 이용하는 패스를 할 때는 정확하게 연결하기 어려워한다. 그리고 무릎 부상 이후 상당히 신체적 능력이 저하된 바 있다. 이 부상 때문에 서울에서 한참 잘 나가다가 침체기를 겪으며 중국으로 이적하고 만다.

 

외눈이라는 장애를 극복한 것은 대단하고 존경할 만한 점이지만 아무래도 두 눈이 멀쩡했다면 동기인 이동국과 함께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로서도 크게 활약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많다.

 

수상 경력

대회 기록

대전 시티즌

FA: 2001

FC 서울

리그컵: 2006

포항 스틸러스

K리그 클래식: 2013

FA: 201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동아시안컵: 2003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AFC U-19 챔피언십: 1998

 

개인 수상

K리그1 MVP: 2010

K리그1 베스트 XI: 2006, 2010

K리그 올스타전 MVP: 2004

FAMVP: 2001

FA컵 득점왕: 2001

동아스포츠 대상: 2010

7.3. 수훈[편집]

체육훈장 맹호장: 2002

 

여담

  • 김은중이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대전을 떠난 후 대전팬들은 '기억하다, 기다리다'라는 현수막을 만들어 내걸었는데, 2014년 김은중이 대전에 복귀하면서 기다리다를 지우고 '기억하다, 돌아오다'라는 현수막으로 다시 만들어 내걸었다.

  • 2011년 5월 11일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멜버른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후 경기 도중 쓰러져 의식을 잃은 후배 신영록을 위해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 동북중학교 3학년에 재학 시절 공에 왼쪽 눈을 맞아 망막이 떨어졌고 시력이 서서히 악화돼 결국 1998년에 실명했다. 한쪽 눈이 안보이는데도 프로에서 주전급으로 뛰었다는건 그만큼 남들보다 더한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 한쪽 눈이 실명 상태여서 당연히 병역면제되었다.
  • 프로 선수로서 첫골과 마지막 경기, 마지막 골을 경험한 것이 모두 한밭종합운동장이었다.
  • 김은중이 맘에 들어하는 별명은 'SHARP18' 이다.(김은중 본인 피셜)
  • 동북고등학교 시절 가수 이기찬과 동창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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