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콘테 프로필 (토트넘 감독)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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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콘테
Antonio Con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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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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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7월 31일 (52세) /
이탈리아 풀리아 주 레체 도 레체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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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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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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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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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76cm | 체중 77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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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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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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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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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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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레체 (1985~1991)
유벤투스 FC (1991~2004) |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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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아레초 (2006~2007)
AC 바리 (2007~2009) 아탈란타 BC (2009~2010) AC 시에나 (2010~2011) 유벤투스 FC (2011~2014) 이탈리아 대표팀 (2014~2016) 첼시 FC (2016~2018) 인테르나치오날레 (2019~2021) 토트넘 홋스퍼 FC (20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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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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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시에나 (2005~2006 / 수석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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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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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경기 2골 (이탈리아 / 199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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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재 토트넘 홋스퍼 FC 감독을 맡고 있다.
유벤투스와 첼시, 인테르에서
모두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선수 경력
클럽 경력
콘테는 고향 팀 US 레체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불과 16살의 나이에
1986년 4월 6일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른다.
당시 레체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마조네의 지도 하에서
콘테는 팀에서 중요한 선수가 되었다.
1987년에는 정강이뼈 골절로 인하여
선수 생활이 끝날 뻔 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재활 훈련에 몰두하여
1년이 채 안되어 필드에 복귀하였다.
1989년 11월 11일에는 SSC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본인의 세리에 A 데뷔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레체에서 총 99경기를 뛰었고 1골을 득점했다.
콘테의 성실함과 중원 장악 능력을 유심히 살펴 본
당대 최고의 명장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가
1991년에 레체로부터 그를 영입했다.
당시 유벤투스 FC의 지역 라이벌 토리노 FC도
콘테의 영입을 시도하였으나,
콘테는 우승 트로피를 획득하고자
유벤투스행을 선택했다.
콘테의 꾸준한 경기력, 프로 의식, 리더쉽,
그리고 강한 정신력은
곧 유벤투스에서도 두각을 내기 시작했고,
1996년에는 역시 세계적인 명장인 마르셀로 리피가
잔루카 비알리가 떠난 이후 유벤투스의 주장으로 낙점하여
직접 그를 임명하였다.
이후 팀의 아이돌로 떠오른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에게
주장직을 물려줬으나 1998-99 시즌,
델피에로의 부상으로 인해 주장으로 복귀,
2001-02 시즌까지 역할을 맡았다.
유벤투스에서 뛰며 콘테는 5회의 스쿠데토 우승,
각각 1회의 코파 이탈리아, UEFA 컵,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유벤투스의 황금기에 큰 기여를 한다.
2002-03 시즌 은퇴를 앞둔 34세의 베테랑으로서
유벤투스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으로
이끈 활약이 백미였다.
명예의 거리 헌정 50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국가대표 경력
콘테는 1994년 5월 27일 2-0 완승으로 끝난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혁명가 아리고 사키는 당시 24살이었던
콘테를 처음으로 발탁하였다.
이후 콘테는 1994 FIFA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도
조국을 위해 뛰었고,
두 대회 모두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다만 유로 1996은 불참하였는데,
이는 1996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한 것이었다.
1994년에서 2000년까지 아주리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
20번의 경기에 나섰으며 2골을 득점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유벤투스와 이탈리아의 레전드 미드필더
콘테는 당대 이탈리아 중원 자원들 중
중요한 자원으로 분류되었는데,
그의 투쟁심과 넘치는 에너지,
그리고 전술적 다양성이 그 이유가 되었다.
콘테는 중원의 어떠한 자리에서도 뛸 수 있었으나
주로 중앙 미드필더에서 박스 투 박스,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중원의 엔진 역할을 맡았고
가끔 우측 측면에 서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뛰어난 크로스 능력 때문이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당시 명성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으나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근면함과 꾸준함,
그리고 빼어난 축구 지능이 콘테가 가진 무기였다.
또한 경기의 흐름을 읽고
선수들에게 직접 고함을 치며 지시를 내리는
타고난 리더형 선수였으므로
많은 위대한 감독들이 그를 주장으로 임명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여기에 중거리 슈팅 능력과 전진성을 보유함으로써
간간히 원더골 및 쐐기골을 득점하였는데,
특히 발리 슈팅과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의 슈팅으로 인한 득점은
콘테의 숨겨진 장기 중 하나였다.
탄탄한 피지컬과 크다고는 볼 수 없는 키에도 불구
헤딩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상대 팀 선수와의 공중볼 경합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그의 투쟁심과 몸을 사리지 않는 대담한 플레이는
선수 생활 내내 콘테가
잔부상에 시달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콘테 스스로가 회고하기를 부상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대담성이 없었다면
유벤투스에서 당대 최고를 논하던 쟁쟁했던 선수단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지도자 경력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선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겨도 팀으로서 이기고, 져도 팀으로서 진다" |
유벤투스 FC 이전
2004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여
루이지 디 카니오 밑에서 AC 시에나 조감독으로
지도자 코스를 밟은 뒤
2006년 세리에 B의 SS 아레초에서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성적 부진으로 한 번 해임되었다가
후임 감독이 4개월여만에 다시 해임됨에 따라 복귀,
리그 후반에 7경기에서
5연승 포함 승점 19점을 획득하며 선전하였으나
1점 차로 강등되었다.
2007년 시즌 중반에 SSC 바리로 이적,
강등 위기의 팀을 중위권에 안착시킨 뒤,
다음 시즌 우승하여 팀을 승격시켰다.
이 활약으로 인해 2008-09 시즌 종료 후
유벤투스 감독직이 공석이 되면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치로 페라라가 대신 선임되었다.
2009-10 시즌 진행 중에 아탈란타 BC 감독으로
세리에 A에 데뷔하였으나
팬들과의 충돌 등으로 인해 3개월만에 사임하였다.
같은 시즌 말 AC 시에나 감독으로 취임,
2010-11 시즌 2위를 차지하여 팀을 승격시켰다.
유벤투스 FC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꼭 한가지만 바꾸고 싶다. 드레싱룸에서 부폰의 옆자리를 고르지 않는 것. 특히 하프타임 때 문 바로 앞의 그 자리는 토리노의 모든 장소 중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였다. 콘테는 심지어 우리가 이기고 있을 때조차 들어와서 그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벽에다 대고(그러니까 내 쪽으로) 던지곤 했다. 거의 항상 물이 가득 담긴 물병, 그것도 거품이 이는 아주 탄산이 많은 탄산수를 말이다. |
- 안드레아 피를로, 자서전 '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 한다' 中 - |
얘들아, 우린 지난 2시즌 동안 7위를 기록했다. 미친 거지. 정말 형편없어. 난 그런 걸 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이제 쓰레기처럼 뛰는 건 그만하자. |
- 2011년 유벤투스 감독 부임 후 첫 락커룸 미팅에서 - |
총 전적 102승 34무 15패, 승률 68%를 기록
2011-12 시즌 무패 우승,
2013-14 시즌 역대 최다 승점 우승 등을 비롯,
3시즌 연속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리그 운용과는 다르게 유럽 대항전에서의
유연하지 못한 전술운용 및 성적이 아쉽지만,
팀을 다시 리그 내 강자로 부활시킨 공로가 컸고,
특히 우승 자체보다 팀의 위닝 멘탈리티를
다시 되살렸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세리에 B에서 FC 바리와 AC 시에나를 맡아 승격시키는 등
감독 경험을 쌓아가던 중
유벤투스 회장 안드레아 아넬리와의 저녁 식사에서
자신의 축구 철학과 팀의 운영 방향에 대한 열변을 토하며
아넬리를 감명시킨 결과 2011-12 시즌부터
친정팀 유벤투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동료였던 디디에 데샹 등의 지지와는 달리
당시 팬들은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루치아노 스팔레티 등을 선호했고
레전드나 주장 출신의 우승 경험이 없는 감독은
페라라의 악몽을 떠올리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참고로 콘테가 오기전 유벤투스의 순위는 7위였다.
부임 첫해부터 기대 이상으로
팀의 위닝 멘탈리티를 되살렸다는 평을 받으며
무패행진을 하기 시작하였고,
전술적으로도 당초 4-2-4를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예상을 뒤엎고 4-3-3, 3-5-2등의 팀에 알맞는 전술을 선보였다.
콘테의 3-5-2 전술은 2014 월드컵에서
3백 복고 바람을 이끄는 데 일조하였다.
그 결과 부임 첫 시즌인 11-12 시즌에
무패 우승으로 스쿠데토를 탈환하였고,
그 후 첫 시즌을 포함하여 3연속 스쿠데토 획득을 이끌었으며,
2013-14 시즌은 102점으로 최다 승점 우승이었다.
칼초폴리로 약화된 이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던 팀을
우승권에 되돌림으로써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이 되었다.
다만 우승 후 다시 나간 유럽 대회 성적은
12-13 챔피언스 리그 8강,
13-14 챔피언스 리그 32강 탈락 후 유로파리그 4강이다.
유럽 대회 성과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으나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라는 것과 동시에
2시즌이라 표본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12-13시즌의 경우에는 8강 상대가
하인케스의 트레블 뮌헨이었다.)
하지만 유럽 대항전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수준급 윙포워드 영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여러 차례 팀에 요청하였으나
바라는 영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2014-15 시즌 시작을 앞두고 갑작스레 사임하여
유벤투스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라고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국내에서의 유벤투스 팬들은
마로타를 비롯한 유벤투스의 디렉터들에게
강력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때문에 콘테 사임의 원인을 보드진에게 돌려
비난해 왔던 것이 선수수급에 대한 불만으로 와전 되었던 것.
아마도 여기에 작성된 내용 역시도
그렇게 와전된 내용이 정설로 받아들여져 작성된 것일 것이다.
당시 콘테가 유로파 리그에서
벤피카에게 졌던 이후의 팬들의 비난 여론에 대해,
"10유로 가지고
100유로짜리 레스토랑 못 간다고 성질을 낸다"
라고 표현함에 따라
선수단 수준에 만족하지 못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반대로 만족을 모르는 팬들애 대한 반격이기도 했다.
또한, 콘테는 이전에도 무패 우승과
역대급 승점기록이라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비난에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등
팬들과 매끄럽지 못 한 관계에 있었던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콘테는
유벤투스에서 3년을 보내는 동안,
선수영입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으며,
퇴임하는 기자회견에서도 쥐새페 마로타 GM을 비롯한
디렉터들에게도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그들을 추켜새웠다.
한 마디로,
전술된 이유로 나갔다면 보이기 힘든 행보이다.
결국, 정리하자면 콘테가 나간 것은
그동안 유벤투스를 살리고 절대적 강자로 자리매김하는데
지대한 공이 있었음에도
유럽 대회에서의 성과에 대한 비난 여론에
부당함과 압박을 느끼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 비난을 잠재울만한 더 큰 성과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돌연 사임했던 것이지,
원하는 영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해서
사임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체사레 프란델리의 후임으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콘테의 유벤투스 주요 특징
- AC 밀란에서 전술 문제로 FA 상태가 된 안드레아 피를로를 자유 계약으로 영입하고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아르투로 비달을 영입해 세리에 최강 미드필더 라인인 MVP 라인을 만듦.
- 이에 끝나지 않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출장 문제로 인한 불만을 갖고 있던 유망주 폴 포그바를 영입하여 MVP 라인을 더욱 강화했으며 포그바의 성장 후 주전 경쟁에서 밀려 있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를 피를로와 같은 레지스타 롤을 수행하게 하여 피를로의 대체자로 만듦.
- 루이지 델 네리 체제에서 영입되었으나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한 안드레아 바르잘리와 레오나르도 보누치를 각성시키며 유벤투스의 수비를 대폭 강화함.
- 그럼에도 보누치가 4백에서 1대1 마크에 약점을 보이며 수비 불안을 보이고 유벤투스의 윙어 자원이 부상과 부진으로 전멸하자 3백으로 전환. 3-5-2 전술을 사용하며 세리에 최강의 수비진인 BBBC 라인을 완성함.
- 그로 인하여 11-12 시즌 세리에 A 무패 우승을 기록함.
- 라이트백 및 윙백으로 슈테판 리히슈타이너를 영입하며 오른쪽을 강화했으나 왼쪽에서 파올로 데 첼리에와 파비오 그로소가 부진하자 우디네세의 미드필더였던 콰드오 아사모아를 영입해 그를 왼쪽 윙백으로 각성시킴.[8]
- 수비와 미드필더를 강화했지만 공격이 불안하자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페르난도 요렌테를 영입하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카를로스 테베즈를 영입하여 공격을 강화. 그 시즌 세리에 A 역사상 최다 승점 우승을 기록.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이탈리아 훈련장의 문은 호텔 회전문과 같다. 들어오자마자 바로 집에 돌아가는 수가 있다. |
유로 2016을 앞두고 콘테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던 시절에 이탈리아는
과도기라고 할 정도로 선수층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유로 2016 때는
역대 최약의 이탈리아 대표팀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유로에서의 전망은 매우 좋지 않았으나,
콘테는 이런 팀으로 난적 벨기에와 스페인을 꺾고,
지난 월드컵 우승팀인 독일과 승부차기까지 가며
대표팀을 8강까지 이끌었다.
유로 2016 본선에서는 같은 조에
벨기에, 스웨덴, 아일랜드가 편성되며
죽음의 조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영 좋지 않은 조편성에 걸려버렸고,
여기에 마르코 베라티와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가
동시에 부상으로 유로에 나갈 수 없게 되며
전망이 좋지 않았으나,
벨기에전에서 자신이 명장인 이유를 전술로 입증하며
2:0 완승을 기록했다.
여기에 즐라탄이 버티고 있는 스웨덴마저도
1대 0으로 꺾으면서,
그 기세를 계속 이어가 16강전에 진출하였다.
대망의 16강 유로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전에서는
짧은 패스를 통한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는
스페인에 대한 맞춤형 축구를 들고 나와
우세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조르조 키엘리니 와 그라치아노 펠레의 골에 힘입어
2-0 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승리는 이탈리아에 매우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이탈리아는 지난 유로 2008 8강전과 유로 2012 결승전에서
모두 스페인에 완패를 당하며 두 대회를 탈락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백미였던 것은,
콘테는 90분 내내 시종일관 경기장에서
제스처와 고함을 통해 선수들을 지휘했으며,
에마누엘레 자케리니가 볼 터치 미스를 저지르자
자신에게 다가온 공을 걷어차며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자
관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였다.
그리고 8강에서 만난 상대는 메이저 대회에서
항상 이탈리아의 훌륭한 샌드백이 되어 주었던 독일이었다.
토너먼트에서 만나면 항상 발라 버렸던 독일을 상대로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천적임을 입증할지 기대를 모았으나,
당시 독일 대표팀의 감독은
2년 전 독일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던 요아힘 뢰프였다.
이탈리아는 경기 내내 그물과 같은 촘촘한 수비로
독일의 공격을 분쇄했으나
역습 시 공격 전개가 둔탁해 다소 밀리는 경기를 했다.
전반전은 무실점으로 버텼으나 후반 20분,
메수트 외질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0-1로 끌려갔다.
이후 후반 33분에 독일 수비수 제롬 보아텡의
만세 핸드볼 파울로 인해 페널티킥을 얻어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골을 성공시켜 1-1로 균형을 맞추었고
연장전까지 끌고 갔다.
연장전에서도 이탈리아는 대부분 수비적으로 나서며
독일의 공격을 막고 또 막아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으나
무려 9번 키커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결국 5-6으로 패하며 아쉽게 대회의 막을 내렸다.
유로 2016이 열리기 전인 2016년 4월 4일,
첼시 FC와 3년 계약을 체결,
이에 따라 유로 2016을 끝으로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의 지휘봉을 내려놓고
2016-17 시즌부터 첼시 FC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참고로 콘테에 이어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물려받은 잔피에로 벤투라는 수준급의 어린 선수들이
여럿 쏟아져 나온 시기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에서 밀라노 참사라는
희대의 대사건을 겪으며 영원한 이탈리아의 금지어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콘테는 이미 첼시와 계약을 확정지었는데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국대 감독 복귀 루머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다만, 콘테가 대표팀 감독을 사임할 때
축협 임원들과 불화가 있었고
본인이 수많은 잉글랜드의 찌라시와 달리
첼시 생활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한동안은
대표팀 감독으로 돌아갈 일은 없어 보인다.
재밌는 건 콘테가 맡아왔던 클럽팀들은
늘 유럽대항전 토너먼트에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반면,
콘테의 이탈리아 대표팀은 선수단이 약하다는 평가를 뒤집고
벨기에와 스페인을 2:0으로 격파,
이어 8강까지 진출해서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독일 상대로도
승부차기 접전 끝에 석패하면서
자신이 토너먼트에서도 역시 좋은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또 다른 일화는 크로아티아와의 경기를 앞두고
크로아티아의 주장 다리요 스르나가
이탈리아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자
콘테는 훈련장 벽에 스르나의 사진을 붙여놓고
"얘들아, 쟤들이 우리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고 했다.
첼시 FC
유로 2016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이 탈락한 후
짧은 휴가를 즐긴 콘테는
2016년 7월 13일부터 첼시에 출근을 하며
본격적인 업무에 나서게 되었다.
부임하자마자 모든 훈련은
더블세션으로 매우 빡세게 진행된다고 한다.
콘테의 부임과 동시에 은골로 캉테가 영입되는 등
첼시의 이적 시장도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콘테는
"첼시는 매 시즌 우승경쟁을 하거나
챔피언스리그 존에 있어야 하는 팀"이라며
매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번 시즌에 첼시가
리그 타이틀을 탈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 하다.
또한 유로 2016에서 보여주었던 인상 덕분에
많은 선수들이 콘테의 첼시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캉테는 레스터 시티 FC에서
챔피언스 리그를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첼시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콘테의 플랜을 꼽았다.
이탈리아 시절 그와 함께 뛰었던 선수들과
당시 첼시 선수들 역시 콘테를 칭찬하는 등
그의 부임은 현재까지는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이고 있는 듯 하다.
부임 후 첫 경기인 라피드 빈과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보여주었듯이
개선할 부분이 많이 보이는 첼시이기에
그에게도 험난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감독 경질이 잦은 첼시 보드진과
불같은 성격의 콘테이기에
수차례 반복되어온 첼시 감독과 보드진과의 갈등이
이번에도 벌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팬들이 많다.
콘테가 다음 시즌에도 첼시의 감독으로 남아있을지
아니면 중도 경질이라는 치욕스러운 결과가
다시 반복될지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시즌이 시작된 후 3연승을 달리고
리그컵에서도 레스터를 격파하는 등 분위기를 끌어올렸지만,
리버풀-아스날과의 5, 6라운드에서 각각 1-2, 0-3 대패를 당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9월 치뤄진 경기에서 리그컵 경기 외에는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리그 3경기에서 1무 2패를 기록하자
벌써부터 경질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이어진 헐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4백과 3백을 병행했는데
선수들이 적응이 안 되었는지
전반에는 암 걸릴 경기력을 보여주며
또 승리에 실패하나 했지만
후반전에서 윌리안과 디에고 코스타의 골로
오랜만에 리그 경기에서 승리했다.
이어진 레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드디어 콘테 감독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3-4-3 포메이션으로 탄탄한 미드필더 라인을 보여주며
각각 홈에서 3-0, 4-0 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시즌 초반 기복있는 경기력과 4~6라운드 무승행진에 따른
콘테 감독에 대한 의구심이 현재 믿음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현재의 첼시는 압도적인 경기는 하지 못해도
탄탄한 이탈리아식 빗장수비에 윙어,
윙백들이 역동성을 살리면서 스트라이커와
2선 자원들의 공격을 돕는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콘테의 카테나치오 빗장수비 전술과 첼시의 선 수비 후
역습 스타일이 찰떡궁합을 이루고 있다.
콘테는 위기에 강한 감독인데,
대개 위기에 빠진 집단은
반드시 탄탄한 수비를 위주로
강점을 하나씩 살려가는 역습형의 경영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정말 강한게 콘테 감독이다.
원래 콘테는 가패나 공격축구를 선호하지만,
팀을 위해서 강력한 수비를 기반으로 하여
천천히 강점을 살려나가는 식의 리빌딩을 선호하며,
몸값이나 유명세에 휘둘리지 않고
팀에 꼭 필요한 선수를 사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돈이 없는 유벤투스 시절 기량이 조금씩 하락하던
스타플레이어를 사와서 다시 재활시키는
재활공장장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좌익축구 우익축구' 라는 책에 의하면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말은 공격축구를 추구하지만
실제 스타일은 디에고 시메오네와 더불어
수비를 극한까지 강화시켜 승리만을 챙기는 극실리주의,
극우 축구를 구사한다고 한다.
첼시가 10월 한 달 동안 4승 무패 11득점 무실점을 하여
프리미어리그 10월 감독상을 받았다.
이 후의 경기들에서 무실점이 깨졌지만
그 상대들이 우승 후보인 토트넘 핫스퍼와 맨체스터 시티이었으며
게다가 이 두 팀을 상대로도 승리를 거두어서
연승 기록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비록 꾸역승이라는 평이 있지만
지난 시즌에는 그것도 못 해서 성적이 개판난 것을 생각하면
첼시 팬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11월에도 이어간 무자비한 페이스 덕분에
프리미어리그 11월 감독상을 받았다.
두 달 연속 수상. 12월에는 선더랜드를 만나
10연승을 달성하였다.
이어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대로 11연승을 기록하며
첼시의 리그 최다연승 타이 기록을 수립했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이후 3경기 연속 1:0 승리,
그리고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과 타이기록을 세웠다.
첼시의 독주는 12월에도 이어졌으며
리그 전승을 기록하며
13연승의 팀 최다 연승을 세웠으며
콘테는 또 다시 12월 감독상을 받으면서
EPL 최초로 이달의 감독상을 3연속 수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7년 첫 경기인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0-2로 패하며
14연승 달성에는 실패하면서 연승 기록은
13경기에서 마감하였다.
이후 후반기에 3백의 위용이
주전들의 체력 저하와 전력 분석 후
상대팀들의 여러가지 대처로 전반기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으나
꾸준히 승점을 쌓다가 막판 토트넘 핫스퍼가
9연승을 기록하며 맹추격했지만
끝내 뿌리치고 36번째 경기 WBA 원정에서
바추아이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후 왓포드와 선더랜드를 격파하며
PL 출범 이후 38경기 체제 사상
단일시즌 최다승인 30승을 기록했다.
FA컵에서도 울버햄튼과 토트넘을 이기며
결승에서 아스날과 맞붙게 되었다.
이전의 이탈리안 감독처럼 PL에서의 첫 시즌에
더블을 달성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1-2로 패배하며
감독 경력 첫 컵대회 우승 도전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비록 FA컵 결승에서 패하며 더블에는 실패했으나
지난 시즌 완전히 몰락한 팀을 리그 우승팀으로 변모시키며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단, 알레그리와 함께
2017년 올해의 감독 후보 3인에 포함되었다.
2017년 5월 우승 직후 쓰인 기사에 따르면
선수 은퇴 후 첼시 감독이 되기까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파란만장하다.
은퇴 후 일면식이 없던 루이 판 할을 보러
몰래 아약스 훈련장에도 찾아간 일도 있다.
(중략)
토트넘 2022-23 시즌
사실 21-22시즌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다른 팀으로 부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던 상황이었으나
일단 토트넘을 챔스에 올려놓았고,
토트넘 구단 또한 그동안 잘 이야기되지 않았던
팀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결정함에 따라
콘테도 이번 시즌에
토트넘을 이끌고 갈 것이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에 맞춰 토트넘은 이반 페리시치와
프레이저 포스터의 영입을 준비 중에 있는데
둘 다 꽤나 연차가 있는 선수들이라
원래 토트넘의 영입기조에는 전혀 맞지 않는 영입
즉 콘테 맞춤형 영입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콘테의 프리시즌은
이적 시장부터 뜨겁게 달구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시간으로 5월 31일 11시 35분경 페리시치의 영입 오피셜이 떴다.
이후 6월 8일 포스터도 영입 오피셜이 떴으며,
6월 14일에는 아무런 전조도 없었던
이브 비수마의 영입 기사가 뜨더니
16일에 로마노의 기사가 뜨면서 비수마 영입도 사실상 확정되었다.
그리고 17일 11시 35분경 비수마 오피셜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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