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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 산악인 프로필

by 두용이 202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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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 산악인 프로필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완등자
엄홍길
嚴弘吉 | Um Hong-Gil
출생
1960914(62)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송산리
국적
대한민국 네팔 (명예시민권)
본관
영월 엄씨 (寧越 嚴氏)
신체
167cm, 66kg
가족
배우자 임순래, 슬하 1남 1녀
학력
호암초등학교 (졸업)
의정부중학교 (졸업)
양주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체육학 / 석사)
한양대학교 (최고엔터테인먼트 과정 수료)
병역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UDT) 병장 전역
종교
불교
직업
산악인,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소속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수식어
히말라야 탱크, 불패의 사나이, 바다의 사나이, 산 사나이
좌우명
자승최강 自勝最強

 

 

 

엄홍길 대장은 대한민국의 대표 산악인이다. 엄홍길 대장은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으며(현 위치 경상남도 고성 엄홍길전시관), 3살 때 의정부시에 속해있는 원도봉산(호원동)으로 이사가 원도봉산에서 성장했다. 고등학생 시절 양주고등학교를 2~3시간 걸처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생애

대한민국 해군 출신, 그것도 UDT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으로도 화제가 된 산악인. 산에 오르던 그는 넓은 바다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1981년 해군신병 224기 수병으로 입대했으며, 갑판병이 되어 함정 근무를 하다가, 타던 경비정이 화재로 퇴역 처리된 뒤 퇴역함 관리병이 되자 이를 지루하게 느껴 UDT에 지원하게 되었다. UDT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경험한 군생활이 훗날 히말라야를 오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군 시절 경주시 감포에서 독도까지 56일동안 수영해서 가기도 했다고 한다.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2010KBS 병영체험 진짜사나이 프로그램에서 모군인 UDT를 다시 찾기도 했다.

 

산악인으로서 그의 마인드는, 산을 오를 때에 산이 잠시 정상을 빌려주는 것일 뿐 산을 정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산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자기가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산악인이라도 정상에 오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흔히들 신의 영역이라 부르는 8,000m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을 낮추고 겸허한 자세로 산을 오르게 된다고 한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정 부터 시작해 1988~ 2007년까지 38번의 실패와 16번의 성공이 있었다. 엄홍길 대장은 (14+2(위성봉))2007년 로체샤르 완등까지 지구상 최초로 히말라야 8000m16좌를 성공했다.

 

14좌 완등

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2001년에 한국에서 두번째이자 세계 8번째로 히말라야 8,000m14개 봉우리를 완등했다. 그리고 다른 8,000m급 위성봉인 얄룽캉과 로체샤르를 등정하여 16좌 등정에 성공한 대한민국과 세계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다만 엄홍길의 시샤팡마 등정은 1993년에 이루어졌으나 등정 실패 의혹으로 인정 받지 못한 탓에 논란을 불러왔으나,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의 국제 공인 기록인 2001년의 재등정을 인정받으면서 마무리되었다.

 

16좌 완등

다만 여기서 짚고 넘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도올 김용옥은 인터뷰에서 '인간으로서 어느 누구도 16좌의 전설을 달성치 못했다. 그런데 엄홍길은 이 전설에 도전장을 냈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엄홍길은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마지막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구상에 8,000m가 넘는 봉우리는 14개도, 16개도 아닌 20여개 쯤 있는데 이 중 우뚝 솟은 핵심 봉 14개를 산악인들이 8,000m 14좌라 불러왔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공인된 봉우리이다. 그러나 위성봉인 얄룽캉, 로체샤르는 독립성이 강할 뿐 14좌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히말라야 14좌 최초 등반가인 라인홀드 메스너를 비롯해 예지 쿠쿠치카, 에르하르트 로레탄까지 이미 전설이 된 그 어느 누구도 16좌 완등을 이루기는 커녕 시도조차 한 적이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15좌 등반했을 때도 당연히 세계최초였다.

 

로체샤르

로체샤르는 히말라야 산맥중에서도 등정이 가장 어려운 산맥으로 엄홍길은 2001년 첫 도전에 실패했으며 2003년 도전에서 정상을 150m 앞두고 판상 눈사태가 일어나 동료 두 명을 잃었다. 2006년에 3번째 시도도 실패했다. 2007531일에 4번째 도전에서 로체샤르 남벽을 통해 등정했다. 평균 각도가 70에서 90도에 이르는 남벽 높이만 3,500m나 된다.

 

8,000m의 산에서는 산소가 해수면의 1/3가량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세발 움직이고나서 3~5분간 숨을 거칠게 쉬어야 다음 한 발을 내딛을 수 있고 체력도 금방 고갈된다. 평균 기온이 영하 30~50도 가량 되어 손끝과 발끝은 감각이 사라진다. 거기에 환각 증세가 일어나 옆에 동료가 말을 시키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리며 꿈을 꾸기도 하며 이 상황에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엄홍길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도 자주 느끼지만 정신력으로 극복한다고 말했다.

 

로체샤르에 오르는 순간 38번의 히말라야 등정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숨진 동료들이 생각나 태극기를 꽂고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동료 변성호 대원에게 눈에 빛이 반사되어 설맹이 걸려 앞이 안보이는 현상이 발생했다. 대원들은 당황했으나 안보이는 대원을 데리고 하산을 결정했고 서로의 몸을 묶은상태에서 내려가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죽을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다행히 무사히 하산했다. 5시간이면 내려오는 것을 12시간동안 통신 두절이 되 베이스캠프 기자들이 실종기사를 내보내려는 순간 엄홍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엄홍길은 떠난 동료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힘을 달라며 기도했다고 한다.

 

휴먼 원정대

2005년에는 에베레스트산에서 숨진 박무택, 백준호, 장민 대원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엄홍길과 대원들이 '휴먼 원정대'라는 팀을 꾸려 등정하기도 했다. 세 명의 대원들은 엄홍길과 함께 한국에서 준비한 후 네팔에서 헤어져 에베레스트로 갔고 엄홍길은 얄룽캉이라는 15좌에 등정하기 위해 흩어졌었다. 엄홍길이 정상에 등정 후 하산길에 후배들의 조난 소식을 들었다. 8,750m에서 설맹에 걸려 주저앉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들은 결국 내려오지 못하고 사망했다. 시신이 실종된것도 아니고 산에 매달려 있어 다른 사람들이 등정할 때마다 지나치게 되는데 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휴먼원정대를 꾸려 시신 수습에 나선 것이었다. 휴먼원정대는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다. 엄홍길은 컨디션이 매우 안좋아서 고생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박무택은 발견하였으나 눈으로 인해 몸이 단단해져서 무려 100kg이 넘었고, 결국 시신을 데리고 하산하는 것을 포기하고 해가 잘 비치는 동쪽에 돌무덤을 만들고 하산했다. 백준호, 장민 대원들의 시신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얄룽캉 산상음악회

엄홍길 이문세

가수 이문세는 2004315일 히말라야 산맥의 얄룽캉봉 8,505원정을 떠난 엄홍길 단장 일행과 현지 베이스 캠프에서 만나기 위해 연극배우, 대한산악연맹 전무 등 9명과 함께 2004417일에 출국했다. 가수 이문세씨는 엄홍길 대장을 위해 얄룽캉봉 5,500m에서 산성음악회를 열었다. 5,800m는 평지 산소의 30% 이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고산에서의 음악회였다.

 

무릎팍도사 출연

대한민국에서 산악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서, 16좌 등정 이후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16좌의 마지막 고비였던 로체샤르 등정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산악인으로서의 삶과 도전 정신 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평소에 무릎팍도사를 보지 않던 사람들도 '엄홍길이 나오니까 한 번 볼까'해서 본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간 수많은 강연과 방송 출연을 해왔지만 무릎팍도사라는 예능 프로에 나오게 된 이유는, 산에 관련된 에피소드나 인생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산은 보면 볼수록 익숙해지고 정이 가는데, 로체샤르만큼은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한다.엄홍길 대장이 오른 루트가 수직 빙벽이 3,500m 이라고한다.

 

더불어 산에 오르다보니 언제라도 죽을 각오를 해서 201334TV에 나와 미리 쓴 유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후배이던 박영석(1963~2011), 박무택 이후 에베레스트를 등정중이던 오은선에 의해 시체가 처음으로 발견되고, 후배의 지현옥같은 등산가들이나 친하게 지내던 셰르파들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걸 하도 많이 봤으며, 자신도 죽을 고비를 많이 겪다보니 이런 유서 작성은 당연했을 것이다.

 

나중에 청소년들에게 청소년들이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길 원하여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 등산 교실을 만들 것이라고 했으며, 현재 청소년들을 위해 강북구 청소년 희망원정대를 만들어 원정대장을 맡고 있다.

 

엄홍길 휴먼재단

16좌 등정을 마친후 이후에는 8,000m 고산에는 오르지 않고 있으며 현재는 인생의 17좌인 엄홍길휴먼재단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안나푸르나 등정 당시 모든 것을 베풀며 살 것을 다짐했다고 하며, 네팔에 학교를 지으면서 이 맹세를 지키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17개의 학교를 세웠으며, 2022년 기준으로 19개의 학교 세웠다고 한다. 16번째 학교보다 17번째 학교가 먼저 완공되었다. 1986년도에 사망한 셰르파 동료의 사망 후 유족들을 찾아갔더니 너무나 어럽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 후손들이 아버지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도록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학교의 보건 교사가 되거나 새로운 학교를 세우는 건설현장의 현장 소장이 되기도 했다.기사

 

그의 책을 보면 요즘 기후 변화(지구 온난화)가 에베레스트나 히말라야에서도 뼈 저리게 알 수 있을 정도라는 걱정이 나온다. 1980년대만 해도 히말라야의 산들은 날씨가 나빠도 사흘 정도만 마을에서 쉬면 날씨가 좋아졌지만, 2000년대에 와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산 곳곳에 눈이 많이 녹은 게 갈수록 늘고 있다면서, 산마을에서도 차와 첨단장비로 편하게 지내고, 갈수록 자연이 오염되고 있는데 머지않아 히말라야 산들에 눈이 남아있긴 할까 걱정이 된다고 회고했다.

 

네팔과의 인연

2015년 네팔 대지진 때, 지인들과 함께 네팔에 구호 활동을 위한 자원 봉사를 하러 갔다. 네팔에 대하여 애정이 각별하다고 밝혔는데, 네팔에 초등학교를 세우기도 했고 현지인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후배 산악인들에게 네팔 사람들을 무시하면 내가 가만 안 둔다고 엄격한 충고를 할 정도로 네팔은 제2의 조국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등반기록

봉우리
높이(순위)
산위치
등반일자
에베레스트
8,850 m(1)
중국/네팔
1988년 9월 26일
초오유
8,201 m(6)
중국/네팔
1993년 9월 10일
마칼루
8,463 m(5)
중국/네팔
1995년 5월 8일
브로드피크
8,047 m (12)
중국/파키스탄
1995년 7월 12일
로체
8,516 m (4)
중국/네팔
1995년 10월 2일
다울라기리
8,167 m (7)
네팔
1996년 5월 1일
마나슬루
8,163 m (8)
네팔
1996년 9월 27일
가셔브룸 1봉
8,068 m (11)
중국/파키스탄
1997년 7월 9일
가셔브룸 2봉
8,035 m (13)
중국/파키스탄
1997년 7월 16일
안나푸르나
8,091 m (10)
네팔
1999년 4월 29일
낭가파르밧
8,126 m (9)
파키스탄
1999년 7월 12일
칸첸중가
8,586 m (3)
인도/네팔
2000년 5월 19일
K2
8,611 m (2)
중국/(파키스탄/인도)
2000년 7월 31일
시샤팡마
8,027 m (14)
중국
2001년 9월 21일
얄룽캉
8,505 m (14)
인도/네팔
2004년 5월 5일
로체샤르
8,382 m (4)
중국/네팔
2007년 5월 31일

 

엄흥길 8000m 히말라야 사진

 

경력

2001~현재 플랜인터네셔날 한국위원회 홍보대사
2002~현재 한국청소년문화원 홍보대사
2003~현재 (사)한국올림픽 참피온클럽 홍보대사
2006~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홍보대사
2006~현재 의정부시 홍보대사
2007~2009 기상청 홍보대사
2007~2009 부산교육청 홍보대사
2007~2008 함평세계나비. 곤충엑스포 홍보대사
2008~현재아시아기자협회 홍보대사
2009~2011 한국토지공사 홍보대사
2009~2012 춘천월드레저총회 및 경기대회 홍보대사
2010~현재 KOICA(한국국제협력단)홍보대사
2010~2012 로터스월드 홍보대사
2010~2014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홍보대사
2011~2012 광주비엔날레 홍보대사
2011~현재 경남 고성 공룡세계엑스포 홍보대사
2012~2014 여수세계박람회 홍보대사
2012~현재 소방방재청 안전 홍보대사
2012~2013 세계자연보전총회 홍보대사
2012~2013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 홍보대사
2012~2014 국토해양부 극지 홍보대사
2012~2015 연세사랑병원 홍보대사
2012~현재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
2012~현재 육군사관학교 홍보대사
2013~2014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홍보대사
2013~현재 안전행정부 안전문화 홍보대사
2013~현재 사단법인 스포츠봉사단 고문
2014~2015 산림청 정책자문위원
2014~2015 한국자유총연맹 홍보대사
2014~현재국립공원관리공단 홍보대사
2016~현재 문체부 스포츠 안전 홍보대사
2016~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홍보대사
2016~2017 헤이그 프로젝트 홍보대사
2017~현재 환경부 국립공원 5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
2017~현재 한국걸스카우트연맹 지도자홍보대사
2017~현재 한국장학재단 명예홍보대사
2018~현재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홍보대사
2019~현재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홍보대사
2019~현재 2.28민주운동 홍보대사
2019~현재 주한 네팔대사관 홍보대사

 

여담

  • 2016년에는 바둑기사 조훈현 九단과 엄홍길 대장에게 새누리당에서 비례대표를 제안했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처음 보도된 당시에는 엄홍길 대장이 입당을 고려하는 중이라는 기사가 났었으나 후에 엄홍길 대장이 지인에게 입당제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완곡한 거절의 의사로 생각해보겠다고 말을 했는데 이를 언론에 보도해서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또한 "지금은 정치에 생각이 없다. 히말라야와의 약속을 먼저 지켜야 한다"며 입당을 확실하게 거절한다는 내용으로 다시 인터뷰한 기사가 올라오면서 정치계 진출 소동이 일단락 되었다. 
  • 같은해 2월에는 기아자동차 모하비의 광고모델로 출연했다.
  • 2020년 1월에는 안나푸르나 눈사태에 한국인 4명과 네팔인 가이드 3명이 실종되는 사고에 지원을 하러 네팔로 이동하였다.
  • 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 소속의 나경원 지지유세를 했다. '나경원 후보 지원유세 참석한 엄홍길' 나경원 외에 황보승희와 박종진 등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지지유세를 했다. 위에 언급했듯이 2016년에는 민주당 후보 지원유세를 해준 것을 보면 특정 당을 민다기 보다는 그냥 인맥 따라 지원유세를 해주는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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