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 감독) 김태영 프로필 (FC 발라드림)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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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金太映 | Kim Tae-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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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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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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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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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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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80cm | 체중 73kg | 혈액형 O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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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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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양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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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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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동초 - 고흥중 - 금호고 - 동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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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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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센터백, 레프트백 / 은퇴)
축구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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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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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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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1993~1995)
전남 드래곤즈 (1995~2005) |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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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축구단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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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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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학교 (2006~2007)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09)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9~2012 / 수석 코치) 울산 현대 (2013) 대한민국 대표팀 (2013~2014) 전남 드래곤즈 (2015 / 수석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7~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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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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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경기 3골 (대한민국 / 199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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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축구 선수, 現 축구 지도자로
전남 드래곤즈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수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투혼을 보여주며
4강신화에 기여하는등 전설적인 수비수였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으며,
2012년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대표팀 수비 코치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동메달) 수상에 기여했다.
현재 K3리그에 참가하는 천안시 축구단의 감독이다.
선수 경력
동아대학교를 졸업한 후
K리그 드래프트에 반감을 가져
드래프트 참가하지 않았다.
만약 드래프트에 참가했다면
1993년 당시 신생팀인 완산 푸마에
지명될 것이 유력했기 때문에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대학을 졸업한 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 참가하던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다.
이후 1994년 11월 전남 드래곤즈가 창단 선언을 하자,
당시 이미 국민은행 소속으로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던 김태영은
고향 팀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이미 실업리그에서 2년을 뛰었고,
국가대표에도 선발됐던 김태영은
당시 신생팀이던 전남 수비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1997 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경기에 대거 이탈했으나,
복귀하면서 다시 팀 수비를 안정화 시켰고,
팀의 리그 준우승과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을 이끌며
팀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했다.
팀의 첫 번째 전성기의 시작을 연 것이다.
김봉길이 은퇴한 이후에는 팀의 주장 역할을 맡았다.
1997년 FA컵 우승 자격으로 참가한
1998-1999 아시안 컵 위너스컵에서
팀을 결승까지 올려놓는 활약을 했다.
이후 팀이 부진에 빠진데다,
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소속팀을 떠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훈련하는 시간이 잦아지자,
주장 완장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2003년까지 팀 수비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팀을 지켰다.
그러나, 2004 시즌 중반 무릎 부상을 당하며
전력에서 오랜 기간 이탈했고,
이는 2005 시즌 은퇴로 이어졌다.
2005년 11월 6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광양 홈 경기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고향 팀인 전남에서만 11년을 뛴,
전남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K리그에서만 201경기에 나서서 4골 9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리그컵 49경기 3도움, FA컵 14경기에 출전했다.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로는 A매치 105경기에 나서서
3골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5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자이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주전 수비수로 출전했다.
1992년 10월 21일,
UAE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1993년 3월 9일,
캐나다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첫 골을 넣었다.
이후 미국 월드컵 1차 예선에서 활약한 이후
한동안 대표팀에서 멀어졌다가
1996년 3월에야 다시 선발되었다.
1997년 차범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
꾸준하게 대표팀에 선발되어
수비진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고,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최종 명단에 승선하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홍명보, 최진철과 함께 3백을 형성해
한국 대표팀의 4강 신화에 일조했다.
16강 이탈리아전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전 당시에는 코칭스태프들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까봐 골절 사실을 숨기고
단순 타박상이라고 알려줘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보호대, 이른바 '타이거 마스크'를 착용해
다음 경기에 나서면서 유명세를 탔다.
덕분에 일반인은 보호대를 벗은
그의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복면 히어로 이 타이거 마스크에는 비화가 있는데,
당시 대표팀 의료진은 김태영과 똑같이
코뼈 부상을 당했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인
미야모토 츠네야스가 특수 제작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온 것을 떠올렸고,
J리그 소속이었던 유상철이
일본의 마스크 제작업자를 수소문하게 된다.
다행히 연락이 닿아 이탈리아전 다음날 새벽에
일본에서 제작자 두 명이 한국으로 날아와
김태영의 얼굴 본을 뜬 뒤
10시간 만에 마스크를 만들 수 있었다.
플레이 스타일
현역 시절 아파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거친 수비태권축구로 유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역 내내 퇴장 기록은 없고,
경고 또한 33번에 불과할 정도로
깨끗한 수비를 선보인 선수.
정작 파이터 이미지는 없던 최진철이
K리그 경고 2위를 마크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사실 심판의 눈을 벗어난 경고감이
여럿 있기는 했다고 본인이 자백했다
축구화에 일부러 쇠로 된 징을 박아,
경기장 입장할 때부터 상대 선수에게
쇳소리를 들려주며
위압감을 심어줬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양발을 자유자제로 쓰는 수비수로 유명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자서전에서,
평소에는 오른발을 주로 쓰는데
페널티킥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왼발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유럽에도 드문 케이스라고 회고한 기록이 있다.
이 덕분에 월드컵 당시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고,
실제 오퍼도 몇 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관심을 보였는데,
뉴캐슬 측이 나이가 너무 많다며
턱없이 낮은 이적료를 부르는 바람에
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180cm의 센터백으로서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대 최고수준의 수비수로 추앙받는다.
김태영-홍명보-최진철 이 조합은
한국의 역대급 수비라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원래 왼발을 못 썼지만 파울로 말디니처럼
죽어라 연습해서 왼발을 잘 쓸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노력이 어마어마했음을 알 수 있다.
김태영은 여기서 대인마크 능력과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자신의 작은 키를 커버했다.
당시 크리스티안 비에리라는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에게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경기를 뛰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투지와 끈질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스페인 전에 라인이 뚫려 침투하던
루이스 엔리케를 끝까지 쫓아가 마크하는 장면은
김태영의 플레이의 백미. 작은 키지만
운동능력이 뛰어나 제공권이 제법 뛰어난 편이었고,
상술한대로 속도와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그야말로 한국의 '칸나바로'와 같은 스타일이라 볼수 있다.
실제로 수비수임에도 스피드가 빠른 편이어서
대인마크에 약하고 스피드가 빠르지 않은
홍명보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고,
이를 살려 강점인 대인마크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본 포지션은 센터백이지만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윙백으로 출전했다.
지도자 경력
2006년 관동대학교 축구부 코치를 거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각급 코치를 역임하면서
홍명보 감독을 보좌하였으며,
2009 U-20 월드컵 8강 진출과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 이후 울산 현대의 코치로 부임했으나
이후 홍명보의 부름을 받고 A대표팀 코치로 부임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종료 후
부진한 결과를 책임지고
홍명보가 물러나면서 같이 물러났다.
2014년 12월 15일 노상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였으나,
2015 시즌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했다.
이후 홍명보를 따라 항저우 뤼청행이 거론되었지만,
홍명보를 따라가지 않고 해설가로 활동하였다.
전남 수석 코치 당시
감독(노상래)-수석코치(김태영)-선수(김병지)가
모두 70년생 동갑내기 친구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2016년 6월 태국 프리미어 리그로
갓 승격한 팀인 파타야 유나이티드 FC의
감독 제안을 받았지만 선수단 구성,
환경적인 문제가 많아 감독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2016년 12월 12일 이운재와 함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U-20 대표팀 시절 같은 코치였던
서정원 감독과 재회하였고,
2018시즌까지 활동하였다.
천안시 축구단 감독
2020시즌을 앞두고 당성증 감독의 후임으로
K3리그 참가팀 천안시 축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계약기간은 최소 기간 2년, 최대 3년까지이며
연봉은 역대 천안시청 축구 감독 중
최고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임 감독 당성증이 구단을 떠난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던 만큼 천안 팬들의 인식은 썩 좋지 못했다.
2020년 K3리그에서는 최종순위 10위로 삐걱거렸지만,
2021년 K3리그 17라운드 기준 천안시 축구단은
승점 31점 1위를 달리고 있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2021년 9월에 천안과
2023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결국 이듬해인 2021년은 K3리그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아쉽게
챔피언 결정전에서 김포에 패해 준우승을 거두었다.
2022년 K3리그에서는 시즌 중반까지
2승 8무 6패로 16개팀 중 15위에 그치며
K4리그 강등권을 맴돌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23년에는 프로에 진출하는 만큼 지도력에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독직 수행 중 잦은 예능 프로 출연 논란
2022년 김현회 기자가
김태영의 감독직 외의 잦은 예능 프로 출연에
우려를 기사를 통해 드러냈는데,
2022년 기준 김태영은
천안시 축구단 감독을 비롯해서
무려 3개의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 중 2개는 ‘지금 굳이 맡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표했다.
2022년 7월 기준 천안시축구단은
K3리그 16개 팀 중 15위에 머물러 있는
K4리그 강등권이었는데,
그런 심각한 상황 속에 팀의 감독은
각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예능 프로그램을 찍고 있고
여성 연예인들의 팀을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
부적절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입장이다.
물론 김태영 감독 역시 예능 프로에 출연할 수는 있으나
본업은 예능에 나가는 게 아니라
K3리그 천안시 축구단 지도인 만큼
이는 자칫 부적절해 보일 수도 있으며,
특히 천안시축구단이 2023시즌부터
K리그2에 입성한다는 점인데,
당장 내년 봄부터 프로 팀 전환이라는
중대한 상황 속에서
이 팀의 수장은 너무 팀을 자주 비우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다.
과거 이영표 강원 FC 대표 이사도
팀이 부진한 상황 속에 예능 프로에
출연이 잦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이에 이영표는 팀 홍보 차원이라 반론한 바 있다.
하지만 김태영의 경우 이영표 마냥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팀의 홍보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닌데,
김태영 감독을 비롯한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은
대부분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보다는
포커스가 여전히 2002년에 맞춰져 있고,
김태영 감독 역시 섭외도 ‘천안시축구단 감독’보다는
‘2002년 레전드’에 맞춰져 있다.
그 누구도 김태영 감독이 텔레비전에 나와
웃음을 선사한다고 해 천안시축구단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김태영 감독은 지금 천안시축구단에 집중해
성적을 내야 할 때이며,
아니면 차라리 예능 프로그램에만 집중하기 위해
과감히 현재 직업을 포기하는 것이 맞는 것이고,
지금 이 모습은 천안의 팬들과
축구인들에게 상처만 주는 행동이다.
만일 K리그1의 인기 상위권 구단이
팀 성적이 바닥을 기는데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 축구팀 두 개의 감독을 맡아
고정 출연하고 있다면
이건 당장 경질 당해도 할 말 없는 일이며,
경질뿐 아니라 팬들과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을 만한 심각한 일이다.
단지 천안은 아직 팬층이 두텁지 않고
프로팀이 아니라 비판이 적을 뿐이며,
당연히 비판 받아야 하는 일이고
김태영 감독과 구단이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담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의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특집에서
이정수 선수가 골을 넣는걸 예언하기도 했다.
본래 공격수 출신으로 골맛을 아는
이정수의 면면과
전남 드래곤즈 시절의 스승
허정무 감독의 성향을 감안하여 예측한듯 한데,
그래도 놀랍기는 마찬가지.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98년에는 13번을 달았으나 2002년 월드컵 때는
등번호 7번을 달고 활약했다.
10번 못지 않은 7번의 상징성과
그의 포지션을 감안했을 때
등번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면이 있긴 하나,
아마도 10번을 이영표에게 배정하였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김태영에게 이 등번호를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을용의 증언에 의하면 겉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착하고 깔끔한 성격이라고 한다.
후배랑 방을 같이 써도
본인이 청소 다 하고 빨래를 칼같이 갠다고 한다.
이처럼 솔선수범하는 자세에 뛰어난 프로의식을 갖춰
히딩크와 동료 대표팀 선수들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며,
히딩크호의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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