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연 배우 프로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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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8월 18일 (5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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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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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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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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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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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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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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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cm, 45kg, AB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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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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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2명, 여동생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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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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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동초등학교 (졸업)
풍문여자중학교 (졸업) 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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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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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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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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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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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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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배우.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베니스 국제 영화제' 등에서
총 여우주연상 10관왕을 기록하며,
대중영화계의 역사에 한획을 그은 전설적인 배우이다.
그 외에, 드라마 '여인천하'의 정난정 역으로도 유명하다.
활동
1966년 8월 18일에 출생,
1969년부터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의 언론통폐합 이후로는
KBS로 활동 무대를 옮겨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가 큰 인기를 얻으며
당시 손창민과 더불어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85년,
영화 '고래사냥 2'로 성인 배우로서 첫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부터 강수연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1987년에 개봉된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는
그 해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며 대흥행,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는
관객 수 124,259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대종상'에서 여자 인기상과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기세를 이어받아 개봉된 영화 '씨받이'가
파격적인 소재와 더불어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해외에서 뜻밖의 주목을 받아
'베니스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동아시아 배우 중 최초.
이때부터 강수연에게
'월드 스타'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1989년,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개봉되었다.
강수연의 삭발 등의 투혼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이후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국내외에서 이례적인 성과를 거두며
월드 스타로서 화려한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고,
이어 개봉된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안의 블루' 등이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영화계의 흥행보증수표'로 활약했다.
그러나 1994년에 개봉된
스릴러 영화 '장미의 나날'이 평단에게 혹평을 받고
상업적으로도 첫 실패를 하게 되었다.
더불어 조금씩 치고 올라오는 후배 여배우들과
브라운관에서 활약하던 여배우들이
대거 영화판으로 이동,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진행되었다.
이후 '그 여자, 그 남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어느 정도 흥행시키도 했으나,
이후 지나치게 호불호가 갈리는 내용들의 영화로
대중들의 혹평을 받았다.
1999년, 영화 '송어'가 개봉되었다.
흥행은 좋지 못했으나 작품성은 호평을 받아
'도쿄 국제 영화제' 특별상,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다가 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에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출연해
오랜만에 브라운관 복귀를 알렸다.
'여인천하'는 최고 시청률 35.4%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본인의 연기 경력 최초로
전인화와 함께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는 영화에 간간이 출연하고 있으며,
특히 영화 관련 행사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행정 경험이 전무한 것에 비해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호평을 받기도 했으나,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직원들이
'소통의 단절 및 독단적 행보가 지나치다'는
성명서를 발표해 논란이 되었다.
결국 2017년을 마지막으로 자진 사퇴했다.
2010년대 이후 연기 활동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가
2022년,
연상호 감독의 '정이'로 15년 만에 배우로 복귀가 확정되었다.
뇌출혈로 인한 혼수상태
2022년 5월 5일 오전부터 두통을 호소하였으며,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에 가족들의 신고로
소방대원들이 출동하였으나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즉시 병원에 이송되었고 뇌출혈 진단을 받았으며
혼수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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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에서 최초로 억대 개런티를 받은 여성 연예인이다. 1992년, 영화 '그대안의 블루'를 통해 개런티 2억을 받았다고 한다. 1992년 시점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수준. 광고 출연료는 편당 4억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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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영화 '한반도'에서는 카메오 출연만으로 억대 개런티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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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를 통해 배우 최초로 회당 출연료 500만 원 시대를 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고가의 개런티를 요구하는 탑 배우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엔딩 클로징을 오로지 자신에게만 맞추라고 요구했는데, 이유는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한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싫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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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여인천하'의 정난정 이미지가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전성기 시절부터 영화배우에 가까웠으며 본인도 영화 관련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최초로 세계적인 국제 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당시 언론과 국민들에게 영화계의 상징적인 배우로 각인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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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배우 출신은 성인이 된 후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최초로 깬 주인공이다.[11] 강수연은 뒤에도 나오듯이 초등학교 입학 훨씬 이전부터 계속 인지도 높은 드라마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굉장히 인지도가 높은 아역배우 출신이었다. 이미 대중들에게 일정한 이미지가 각인이 되었음에도, 성인 배우로서 성공적으로 이미지 전환에 성공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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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동안이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 후반에도 미인으로 평가받았으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역 배우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성형 논란도 없다. 이목구비가 새침하고 오밀조밀해서 귀엽고 독특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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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와 행사 등에 모습을 드러낸적이 거의 없으며, 사적으로도 스캔들 같은 잡음이 거의 없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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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이 강수연을 우상처럼 여겨 왔다고 한다. 아직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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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진이 배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된 사람이 강수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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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이 동명여중을 다니던 시절 같은 재단 고등학교를 다녔다. 참고로 최진실 역시 선배인 강수연을 동경하여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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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쇼'에서 김하늘이 연예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로 강수연을 꼽았다. '동감' 시사회 때 참석한 강수연의 실물을 보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감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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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 무명의 단역 배우나 스태프들을 잘 챙겨주기로 유명했다. 촬영하던 영화가 끝나면 항상 본인의 돈으로 뒷풀이를 하면서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스태프들과 무명의 단역들에게 한턱을 내곤 했다. 그때 자주 하던 말이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였다고 한다. 류승완 감독은 무명시절 이 말이 너무 멋있게 들려서 자신의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 서도철의 대사로 인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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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테 술 사주기를 좋아하는 만큼 자신도 술을 잘 마신다. 사실 잘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당대 대적할 자가 없는 전설적인 주당이었다. 영화계에 즐비한 애주가들 중 아무도 강수연을 술로 이겨본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무서운 점은 술을 마셔도 취한 티가 안 난다는 것인데, 일설에는 강수연이 취기가 돌면 탁자 밑에서 신발을 벗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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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 결혼을 안 했냐"는 질문에 "못 했다"고 답한 적이 있다. 본인도 하고는 싶은데 좀처럼 기회도 연도 닿지 않을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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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로 대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이후 사극 촬영이 전무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강수연이 '여인천하'에 출연할 당시, 작품이 추가 연장되면서 정난정 캐릭터가 본인이 생각하던 점에서 많이 멀어지면서 배역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드라마에서 혼자 빠질 수 없어서 계속 찍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사극 연기에 지쳐서 다른 사극 섭외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여인천하' 이후 사극 연기는 '한반도'에서 명성황후로 짧게 등장한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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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5일,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진행한 'KOREAN ACTORS 200' 캠페인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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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7일,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심권호와의 전화통화로 음성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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