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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정치 사회

오세훈 프로필

by 두용이 202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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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프로필

출생
1961년 1월 4일 (61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등록기준지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오산리
(現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본관
해주 오씨
현직
제38대 서울특별시장
서울시립대학교 운영위원장
재임기간
제33·34대 서울특별시장
2006년 7월 1일 ~ 2011년 8월 26일
제38대 서울특별시장
2021년 4월 8일 ~ 현직

 

 

대한민국 정치인, 법조인, 교수, 방송인.

 

 서울특별시장으로 헌정 사상 최연소 민선 서울시장이자

최초의 재선 서울특별시장이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3선 서울시장이 되었다.

 

약력

  • 1973. 2. 서울미동국민학교 졸업
  • 1976. 2. 중동중학교 졸업
  • 1979. 2. 대일고등학교 졸업
  • 1979. 3. 한국외국어대학 법정학부 법학과 입학
  • 1980. 3.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편입학
  • 1983 .2.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학사
  • 1984. 10.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 1987.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시보
  • 1991. 대한민국 육군 중위 전역
  • 1991. 변호사오세훈법률사무소 변호사
  • 1992.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 실장
  • 1996.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
  • 1996. 5. 시사저널 편집자문위원
  • 1996. 경원대학교 법학과 민사소송법 강사
  • 1996. 10. SBS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자
  • 1997.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위원
  • 1997. 9.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
  • 1998. 1. 미국 예일대학교 로스쿨 교환교수
  • 1999.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무료법률상담변호사
  • 2000. 5. 제16대 국회의원 (서울 강남구 을 / 한나라당)[21]
  • 2001. 6. 한나라당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공동대표
  • 2003. 한나라당 최고위원
  • 2003. 7. 한나라당 청년위원장
  • 2003. 7.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장
  • 2004. 1.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 2004. 법무법인 지성 대표변호사
  • 2005. 5. 환경운동연합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 2005. 8.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자문위원회 변호사
  • 2006. 7. 제33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4기 / 한나라당)[22]
  • 2008. 경제협력개발기구 장관회의 명예준비위원장
  • 2010. 7. 제34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5기 / 한나라당)[23]
  • 2011. 3. 제8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공동위원장
  • 2012.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공공정책대학원 방문연구원
  • 2013. 2.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
  • 2013. 4.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2013. 한국국제협력단 중장기자문단[24]
  • 2015. 4.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서울 관악구 을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2015. 4.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 2016. 4.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새누리당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
  • 2016. 공생연구소 소장
  • 2017. 1. 바른정당 최고위원
  • 2018. 12. 자유한국당 국가미래비전특별위원회 위원장
  • 2019. 1. 자유한국당 서울 광진구 을 당협위원장
  • 2020. 2. 미래통합당 서울 광진구 을 당협위원장
  • 2020. 4.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미래통합당 서울 광진구 을 국회의원 후보
  • 2020. 9. 국민의힘 서울 광진구 을 당협위원장
  • 2020. 9.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특임교수
  • 2021. 4. 제38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7기 / 국민의힘)

 

생애

196114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오범환(吳範煥)과 사문화(史文華)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기에 아버지의 부도를 겪고,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에서 자랐다.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학비를 걱정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집주인이 가족들을 쫓아내는 경우가 잦아

국민학교를 4곳이나 다녔다.

해지기 전에 공부하고,

해가 지면 잠에 드는 생활이었다고 한다.

서울미동국민학교와 중동중학교를 졸업하고

중동고등학교를 다니다 대일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대일고등학교(4)를 졸업하고,

1979년 한국외국어대학 법정학부에 입학했다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로 2학년 편입학했다.

사법시험에 붙은 뒤에

국군기무사령부에서 병역을 마치고 중위로 전역했다.

 

 

그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 전공으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미국 예일대학교 로스쿨에

방문 학자(Visiting scholar)로 있다가 귀국하여

민사소송법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원래는 모교의 법대 교수가 되겠다는 목표로 유학을 했으나

당시 법학계의 보수적 분위기로 인해

필드에서 뛰는 변호사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예일대 방문학자 당시 만나게 된 박사과정 유학생들이

서울시정 자문단으로 활동하고도 있다.

 

변호사 오세훈

변호사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이른바 일조권 소송 사건이다.

1993년 인천의 경남아파트 일부 세대에서

대낮에도 전등을 켜야 할 정도로 그림자에 가려

일조권이 침해되었다며 단체 행동에 나선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주민들의 대리인으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당시 33세의 오세훈 변호사였다.

오세훈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13억 원의 배상금을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조권이

헌법상 환경권으로 인정되는 판례를 이끌어냈다.

이는 오세훈의 이름을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환경 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주었다.

 

 

특히 일조권 소송 사건을 계기로

현 환경운동연합의 대표인 환경운동가 최열 대표와 함께

환경운동연합 창립에 참여하였고,

1992년부터 약 5년간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 실장으로

무료상담을 진행하면서 환경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995년 대한변호사협회 환경문제연구위원회 의원을 지냈고,

1997년 서울시 녹색시민위원회 감사를 지냈으며,

1996년부터 2000년까지는

환경운동연합의 법률위원회 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환경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환경운동가로서 적극 활동하였다.

 

일조권 소송에서 승소한 후

당시 MBC 아나운서였던

손석희 현 JTBC 대표이사 사장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한 PD가 오세훈 변호사에게 방송 출연을 제의했다.

이렇게 탄생한 프로그램이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였다.

일조권 소송으로 이름을 높였고,

훤칠한 외모로 주부들에게 인기있는 오세훈 변호사와

김보은 양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활약한

민변 출신 배금자 변호사를 함께 엮어서

월요일 프라임 타임대에 법률 상담 방송을 편성했다.

첫 방송이 나간 후 훤칠한 외모의 젊은 변호사의 등장으로 인해

그동한 변호사에게 박혀 있었던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이미지를

완전히 상쇄하여 큰 호응을 얻게 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오세훈

 

그후 방송 능력을 인정받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을 담당하였고,

96SBS 뉴스 따라잡기,

98년 갑론을박 동서남북,

99년 오늘과 내일 등 각종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또한 남성복 브랜드 로가디스와 청호나이스 정수기 등의 광고에서

모델을 맡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정장 브랜드와 정수기 브랜드는

당시 최정상급의 연예인을 모델로 광고하지만

당시 변호사로서의 스마트한 이미지와

잘생긴 외모, 큰 키(181cm),

그외 여러 가지 요소들로 인하여 일반인으로서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델이 될 수 있었다.

 

95년 발간된 그의 에세이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을 기록했다.

 

 

국회의원 오세훈 (16대)

방송을 통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거대 양당의 영입 러브콜이 엄청났다고 한다.

결국 이회창 총재의 설득으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59.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당선 후에는 4년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남원정과 함께 소장 개혁파로 주목받았다.

 

이후 이명박 서울시장 입후보 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을 지냈다.

이때의 경력과 훗날 서울시장으로서

이명박 시정의 정책을 상당수 계승한 것을 들어

범친이로 분류하기도 한다.

 

임기 중 '오세훈 3'이라 불리는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정당법 개정안을 내놓아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선거 공영제,

비례대표제 실시 및 지구당,

정당 후원회 폐지가 주된 내용이었다.

기존에는 후원의 상한액이 사실상 없다시피해

후원자에게 설설 기는 것이 기존의 정치 문화였는데

오세훈 3법으로 후원 상한액을 500만 원으로 설정해

이런 관행을 근절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기업의 정치자금 후원을 금지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여야를 막론하고 반발이 심했다.

하나 의외인 것은 통상적으로 보수인 한나라당보다

진보 성향인 새천년민주당(이후 열린우리당)에서 반발이 심했다는 것.

한겨레 등 진보 성향 언론들은

개혁에 비교적 소극적이던 한나라당이

오히려 파격적인 안을 제시하는데도 진전이 안 된다며

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선거를 앞두고 똥줄이 탄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간사가

오세훈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여 여야 합의로 개정되었다.

이때 열린우리당 정동영 대표는

선거 후 다시 해당 법안을 원상복구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국민 여론의 반발이 커 '오세훈 3'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이렇듯 강력한 정치개혁 법안 등을 통과시키며

'차떼기당'이라고까지 불렸던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다,

이후 '5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게도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공천을 위해 당론에 따라 상식과 괴리된 발언을 해야만 하고,

생계를 위해 후원자 앞에서 을이 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국회의원 시절보다

그전 변호사 시절 수입이 수 배 이상 많았다고 한다.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의정활동 잔여금 2,500만 원 중

1,500만 원은 환경 재단에,

1,000만 원은 서울 문화재단에 기부하였다.

그리고 국회의원 4년 간의 임기 기간 내내

시민단체에서 시상하는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되었다.

 

서울시장 오세훈 (33, 34대)

그렇게 국회의원직을 그만두며 여느 초선 정치인들과 같이

정계를 떠나 은퇴한 줄 알고 있었으나,

이후 2006년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오자

다시 정계에 복귀,

한나라당 내부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경선에서 따돌리고

2006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상대는 열린우리당의 강금실과 민주당의 박주선.

사실상 이회창, 노무현, 김대중의

수제자들의 경쟁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압도적인 표차로 이명박의 뒤를 이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며 민선 최연소 서울시장이 되었다.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여러 가지 공과가 있었다.

2007년에는 민원 관련 문의전화가 분산되어 있어

복잡하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 통합 민원 서비스인 다산콜센터(120)를 설립하였다.

또한 그동안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가

각자 대중교통 환승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천시, 경기도와 협의하여

수도권 통합 대중교통 환승제를 실시하였다.

 

서울시 공기를 제주도처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천연가스 버스 교체 사업 및

도로 물청소 등의 환경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2년 후 서울시 미세먼지 농도가

23%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종합하자면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중국 사회과학원 도시 경쟁력 지수는 세계 27위에서 9위로,

광역자치단체 청렴도는 15위에서 1위로 상승했다.

또한 UN 공공행정 대상 2, 우수상 3회를 수상했고,

유네스코 2010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됐다.

그리고 서울시 관광객이 30% 증가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이후 훗날 박원순이 시장이 되며 세워진

박원순 시정에선 거꾸로 중국 사회과학원 도시 경쟁력 지수는 세계 15위로,

광역자치단체 청렴도는 1위에서 16위로 추락하는 등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렸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대단한 성과라고 볼 만하다.

 

이러한 치적들과 디자인서울, 다산콜센터, DDP 등등의 성과들을 바탕으로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였다.

처음 여론조사에선 가볍게 한명숙 전 총리를 제치고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이후 한명숙 전 총리의 강력한 추격 드라이브를 허용하며

박빙의 승부를 이어갔다.

그러나 결국 선거 개표 막판에 강남 3구의 몰표를 받으며

가까스로 승리,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이 되었다.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으로서 계속하여 좋은 업적을 쌓아간다면

박근혜와도 견줄 수 있거나

한나라당의 포스트 박근혜로 성장할

비박계의 대선주자로 기대를 받았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전후 사정은 이러했다.

5회 지선에서 한명숙과의 초접전 끝에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은

시장 첫 임기(2006~2010) 때와는 달리

서울시의회 다수당 지위를 민주당이 차지하여

시정 운영에 어려움이 빚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거기에 무상급식과 관련해

당시 민주당 서울특별시당 학교급식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초선 서울시의원 강희용이 주축이 되어

무상급식 반대 주민들의 서명 명단이 허위라는 지적을 받게 되었고,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조직적으로 선거 참여한 것은 아닌지 집중 추궁을 받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세훈은 민주당이 밀어붙히던 무상급식안에 대해

제동을 걸며 이를 주민투표에 붙여 처리하기로 결정한다.

전체 서명인 수 815817명 가운데 이의 신청과 무효로 판명된 수치를 제외하고

총 서명인 수의 62.8%512250명의 서명이 유효한 것으로 확인되어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다.

이에 민주당은 강희용 시의원을 중심으로

예산 및 재판 중인 사안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을 제기했고

투표 무효화 운동이 활발히 전개하며 저항했다.

 

결국 이러한 강력한 반대 운동으로

투표 참여율이 저조하여(25.7%) 개표가 이뤄지지 않아

무상급식 투표안은 부결되었다.

사실 여기까지만 읽어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문제는 이후 이 주민투표의 결과에

본인의 시장직을 걸어버리는 자충수를 두어버렸다는 것이다.

즉 주민투표를 아예 투표율 미달로 개표조차 못하게 된 오세훈은

시장직에서 사퇴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버렸던 것.

이에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에서도

무상급식을 가지고 왜 본인 시장직을 걸었냐며

온갖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다.

 

 

한나라당에선 시장직 사퇴라도 당과 조율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오세훈은 이를 거부, 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시장직에서 사퇴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오세훈의 정치 경력 최대의 오점으로 남게 되었으며,

이후 오세훈은 10년의 세월을 정치적 야인으로서 황혼기를 보내게 된다.

 

서울시장 사퇴 이후

시장직에서 사퇴한 이후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공공정책대학원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하고 귀국했다.

그후 로펌의 고문변호사로 있으면서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고려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미래 사이테크 포럼'의 대표를 맡아

각종 미래첨단산업 연구와 세미나 개최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15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한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관악을 지역구에서

새누리당(구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하였다.

 

다시 정계로

당의 이른바 '험지' 출마 요청을 거절하고,

2016117일 종로구 출마를 선언했다.

종로구가 노무현, 이명박 등 과거 대통령들의 지역구였기 때문에,

종로구 출마는 사실상 대권을 노린 포석.

당내 경선에서 '지역 기반 탄탄'을 내세운 박진 전 의원과

치열한 경쟁을 펼친 끝에 승리하여

새누리당 후보로 종로구에 출마하였다.

 

324KBS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45.8%,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28.5%로 조사되었다.

열흘이 지난 44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41%로 약 39%인 정세균 후보와 격차가 크게 줄어들어

치열한 접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순위는

처음으로 김무성 대표를 앞지른, 여당 내 1위로 나타났다.

 

413일 출구조사 결과 42.4%

51%인 정세균 후보에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고,

결국 개표 결과 42.4%에도 못 미치는 39.7%를 획득하면서 낙선했다.

 

낙선 이후에도 새누리당 내의 대권주자 인물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대권주자 지지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래도 오세훈의 대권후보 지지도가

김무성보다 높은 여권 내 1위라는 것이다.

 

2017년 1월 1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오세훈은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에서 낙선한 이후

지속적으로 광진을에서 땅을 갈고 닦으며 

추미애와의 맞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과거 대선주자에게 가장 의미있는 지역구인

종로에 출마했던 것처럼

보수진영의 입장에서 서울의 대표적 험지인 광진을에서

여당 당대표를 지낸 거물 추미애를 꺾으면

순식간에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광진구 을에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

다만 이 지역구 의원인 추미애는 법무부 장관을 맡으면서

불출마가 확정되었고,

대신 맞수로 문재인 정부에서 대변인을 지낸

정치 신인 고민정과 맞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고민정과 맞대결한 결과

47.8% 대 50.4%로 2.6% 차이로 석패했다.

만약 당선되었다면

같이 낙선하고 대표직을 사퇴하며

사실상 정치 인생이 끊긴 황교안을 대체하며

보수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할 수 있었으나

패배하여 오세훈 입장에선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다.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당선

2021년 1월 7일 안철수가 사실상

오세훈의 합당 및 입당 제안을 거절하자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건부를 떼고

공식적으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 날 출마 선언에선 오세훈은

과거 무상급식 건으로 인해

서울시장직을 사퇴하였던 것에 대한 반성하며 사과했다.

또한 오세훈은 이 날 이번에 1년 보선 시장으로 당선되면

앞으로 내놓게 될 공약은 전부 5년짜리라며

"그 5년 동안은 정말 대통령직 도전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버리겠다."고

당선될 경우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2021년 3월 23일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경선 결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누르고 보수야권 단일 후보로 확정되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접전으로 나타났던 것과는 다르게

예상을 깨고 안철수 후보를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리며

낙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오세훈은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인

박영선을 상대하는 보수 야권의 단일 후보로 결정됨으로서

지난 10년간의 정치적 방황기를 마무리하고

반등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남은 것은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맞대결이다.

사실상 이번 재보선은 국민의힘의 운명이 걸린 선거이기에

국민의힘의 대표 선수로 나선 오세훈의 어깨에

당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볼 수 있다.

 

 

4월 7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57.50%를 득표하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39.18%)를 

18.32%포인트 격차로 압도했다.

역대 서울시장 당선자 중 최고 득표수 또한 경신한 건 덤.

 

 

결국 오세훈의 정치인생을 건 사실상 마지막 승부수는 

권토중래를 거두며 대성공으로 끝이 났다.

이 때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서

지난 고생길이 스쳐지나갔는지 한동안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이 화려한 복귀 한 방으로 차차기 대권주자와

보수정당 암흑기 탈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차기 대선 정국에서도 보수 야권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2310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서울시정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310일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당선인과 오찬을 하였는데,

이준석 대표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오 시장도 양성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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