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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레전드) 김기훈 선수의 영향력

by 두용이 202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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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레전드) 김기훈 선수의 영향력

출생
1967년 7월 14일 (54세)
서울특별시 중구
국적
 대한민국
학력
리라초등학교
배재중학교
경기고등학교
단국대학교
종목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가족
배우자, 아들 김태형 (2010년생)
주종목
1000m, 1500m
신체
172cm, 76kg

 



1. 대한민국 최초 쇼트트랙 선수 중 한명 (1984년)

이승훈과는 반대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쇼트트랙으로

전향한 케이스에 속한다.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선수로 활동하던

고등학교 시절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가 선발된 것이다.

참고로 이때 1984년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은

최초로 시행된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으로

김기훈은 선발전을 거쳐 선발된

최초의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2. 쇼트트랙 올림픽 시범종목 당시 금메달리스트 (1988년)

종목을 바꾼 데 대한 어려움도 있었으나

태릉선수촌에서의 혹독한 훈련과

당시 정상급 쇼트트랙 선수들의 비디오를 구해

분석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1500미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이듬해 소피아에서 열린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 3개를 쓸어담았다.

 


3.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최초 금메달리스트 (1992년)

잠시 인대 부상으로

대표팀 에이스 자리를 이준호에게 넘겨주기도 했으나

지독한 의지로 재활에 매진한 끝에 다시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이 대회 1000미터에서 김기훈은 선배이자 라이벌인

이준호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5000미터 계주에서는 에이스의 상징인 마지막 주자로 출전하여

이후 김기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날내밀기로

극적으로 캐나다를 꺾고 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당시는 개인전이 1000미터 한 종목밖에 없긴 했지만

전종목 석권을 달성했다. 

마지막 코너에서 인코스의 좁은 틈을 파고들고

날내밀기로 역전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계주 경기에 출전한 국가대표 멤버들은

김기훈을 비롯해 모지수, 송재근, 이준호

공교롭게 넷 모두가 이후 국가대표 지도자를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림픽 이후 미국 덴버에서 열린 1992 세계선수권에서

전종목을 석권하며 5관왕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2년 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했다.

이 때 당시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아

세대교체론까지 제기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김기훈은 보란 듯이 1000미터에서 신예이자

자신을 이을 차세대 에이스 채지훈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여

올림픽 쇼트트랙 최초의 단일 종목 2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1998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 은퇴하게 되는데

이 때 나이는 31세였다.

 

4. 코너를 돌때 왼발을 빙판에서 떼고 오른발만으로 도는 자세 처음으로 고안

 

5. 마찰력 줄이는 쇼트트랙 개구리 장갑 시초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전,

흐물거리는 스케이트화 발목 부분에 에폭시를 발라 고정시키는데

남았길래 호기심으로 장갑에 발랐다.

딱딱하고 마찰력도 없었다.

이거다 싶었다.”

 

6. 인코스 추월 최초

 

 

7. 날 들이밀기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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