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선 선생님,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 연구 :: 외시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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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선생님,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 연구

by 두용이 202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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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학자들의 자존심을 뭉갠 한국 여성이 내뱉은 한마디.jpg

 

박병선 선생님 

 

직지심체요절 발견

1967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가 되어

스승 이병도의 당부에 따라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다니던 중

우연히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해

1972년 직지심체요절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임을 입증하였다.

당시 직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내에서 방치되어 있었고,

박병선 박사가 직지를 발견해 알리자

"말도 안 된다"며 무시를 받았다고 한다.

박병선은 혼자서 스스로 직지가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해야 했다.

당시 직지심체요절에

"이 책은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되었다"고 명시되어 있었으며,

때마침 청주시에 택지 공사 도중 발견된 한 절터에서 관련 유물들이 발굴되어

절터가 원래 흥덕사였음이 밝혀지면서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것이 입증되었다.

이 일로 2001년 9월 직지심체요절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다.

이 일로 그녀의 이명은 "직지대모"가 되었다.

그러나 도서관 내에서 그녀의 입지는

오히려 좁아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한국관에서 직지를 전시한 적이 있었지만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고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언론에 "직지심체요절 발견"이라는 기사가 나가자,

도서관과 아무런 상의없이 절차도 거치지 않고

그 사실을 공개했음에 분노했던 것이다.

말하니까 본인들이 무시해놓고선 

우여곡절 끝에 자리는 보전할 수 있었다.

 

외규장각 의궤 발견 및 반환

1975년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고종 3) 당시

약탈한 도서인 외규장각 의궤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발견하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과거 프랑스가 행했던 했던

약탈행위를 까발린 것에 불편해하여 사표를 강요했다.

박병선은 결국 사표를 냈지만,

개인 자격으로 도서관에 매일매일 10여 년간 드나들며,

도서관 관계자가 책을 치울까봐

밥도 먹지 않고 연구에만 매진하였다.

이 때 도서관에서의 별명은 "파란 책만 들여다보는 여자"였는데,

외규장각 의궤의 표지가 파란색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정부에서도

주불한국대사관에 사무실 하나를 연구실로 내주는 방식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박병선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조선조의 의궤>라는 책으로 출간한다.

 

당시 국내에 있던 의궤는

대부분 신하들이 열람하는 분상용 의궤였다.

반대로 프랑스에서 보관 중이던 외규장각 의궤는

표지가 파란색 비단으로 만들어진 어람용으로,

어람(御覽)이니 왕만 보는 의궤였다.

외규장각 의궤가 있다는 걸 몰랐던 국내의 학자들은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을 찾아서

어람용과 분상용이 있었던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람용 의궤가 외규장각에 전부 소장되어있어서

국내에 어람용 의궤가 전혀 남아있지 않아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병인양요 이후에도 그 행적이 추적되지 않았는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에 있던

어람용 의궤들이 발견된 것이다.

 

어람용과 관상용 의궤 전부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어람용 의궤는 왕이 열람하기 때문에

분상용 의궤보다 더 화려하다.

어람용 의궤의 특징은 파란색/녹색 비단으로 표지를 만들고

초주지에 내용을 필사/인출했다.

인찰선은 붉은색으로 만들었고

책 겉에 변철을 놋쇠로 만들었고

책을 고정하기 위해 박을정에 국화동 5개를 대었다.

그리고 변철에 원활을 붙여놓았다.

어람용은 도감을 설치하고 의궤를 완성해서 폐지할 때까지

1권만 만든다.

분상용은 붉은색 베로 표지를 만들고 종이도 저주지를 쓰고,

인찰선은 검은색으로 만들었다.

도감에서 어람용 의궤 1부를 만들고 분상용으로

최소 4~8부 정도를 필사/인출한 뒤

신하들에게 하사하거나 춘추관 또는 의궤가

필요한 기관에 배포했다.

 

외규장각 의궤는 본래 외규장각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1782년에 강화도 외규장각을 설치해서

기존에 있던 어람용 의궤를 옮겨 보관하고 있었는데,

1866년 병인양요로 인해 프랑스로 넘어갔다.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국내의 역사학자/서지학자 등 많은 학자들이

의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조선시대의 행사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외규장각 의궤 존재를 입증한 후로는

외규장각 의궤의 한국 반환 운동을 펼쳤으며,

김영삼 한국 대통령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영구대여 방식으로의 반환이 합의되었다.

이에 따라 20116월 대여 형식으로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145년 만에 돌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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