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아나콘다
실제로 본 골때녀들은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나는 골때녀 안팎에서 축구가 지닌 본질적인 요소를 많이 봤다.
일단 이들은 직업 축구선수가 아니다.
져도 개인적인 명예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개인 훈련까지 하면서 축구에 빠진다.
골 때리는 그녀들을 처음 만난 건 지난 10월이었다.
최진철 감독, 이천수 감독과 함께 팀을 선정 후
처음으로 선수들을 만났다.
설 특집과 시즌 1을 시청자로 재미있게 봤던 나였기에
감독으로 선수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설렜다.
히든 멤버 최은경 아나운서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멤버와 처음으로 대면했다.
처음 선수들과 만나고 가장 궁금했던 건 하나였다.
‘팀 스포츠를 몇 명이나 해봤을까?’
선수들에게 “혹시 축구해보신 분 있나요?”라고 물었다.
이구동성으로 “아니요”라는 말이 돌아와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첫 경기를 치르기 전부터
어떻게 이 팀을 짧은 기간에 좋은 팀으로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감독 데뷔 전은 혹독했다.
평가전에서 2패를 했다.
경기에서 진다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우리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들은 서로 “잘했어”라고 칭찬하며
“울지 마”라며 위로하기도 했다.
승리를 챙기지는 못했지만,
선수들이 축구를 즐기고자 하는 모습을 봤다는 건 희망적이었다.
휴식, 기본기 훈련, 지난 경기 비디오 미팅.
일정만은 프로팀과 같았다.
특별히 제작진에게 평가전 영상을 요청해
훈련에 앞서 경기를 봤다.
그런데 다들 그 경기를 기억하지 못했다.
선수들은 “내가 저랬다고요?”라는 말만 했다.
그때는 몰랐다.
선수들은 조용히 승부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디오 미팅이 끝나고 훈련을 했다.
정해진 2시간 훈련을 마치고도 누구도 집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4시간이 다 돼서야 감독인 내가 지쳐 훈련을 강제로 종료하였다.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떠나려고 할 때
윤태진 아나운서가 “감독님 진짜 가시는 거예요?
훈련 더하면 안 될까요?”라고 묻기까지 했다.
“안 됩니다. 집에 돌아가서 쉬셔야 합니다.”
두 번째 훈련을 위해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
나와 함께 팀을 훈련시키는 정종봉 코치에게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번 훈련 후에 감독님 가시고도
몇 명은 남아서 훈련을 더 했어요.”
아나콘다의 열정은 내가 축구를 처음 시작해서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하겠다는 그 이상의 열정이었다.
마음속 불길을 더 끌어올리려고 체력훈련을 준비했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치를 떤다는
일명 공포의 삑삑이 ‘셔틀런’이다.
이 훈련을 준비할 때는 과연 선수들의 체력적 한계는
어디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사실 많은 선수들이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선수들은 오히려 체력적인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셔틀런을 수행하면서 선수들은 나에게 눈으로
“감독님 그만하시죠”라고 레이저를 쏘았지만
나는 “감독은 여러분들이 땀 흘리며 힘들어하면 즐겁습니다”라며
완주를 독려했다.
셔틀런이 끝나고 신아영 아나운서는
“감독님 제 인생에서 이렇게 심장이 터질 듯하게
뛰어본 적은 처음이에요”라고 했다.
힘들지만 즐거운 게 사람을 잡는다.
그게 매력이다.
올스타전에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골을 넣은 액셔니스타에 최여진은
다른 방송에서 나와 “배우는 부캐일 뿐,
따로 코치를 구해서 훈련 중”이라며
“여우주연상 타도 이보단 안 좋을 것 같다,
스포츠가 주는 감동과 희열이 있다,
나 눈물 날 것 같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아나콘다, 왜 나를 눈물 나게 하나
여전히 선수들 투혼에 ‘따봉’을 날린다.
두 번째 평가전에서 주시은 아나운서가 경기 중
다쳐서 더 뛰기 어려웠다.
주 아나운서는 “제가 빠지면
팀원들이 더 많이 뛰어야 하고 힘들 텐데
너무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충분히 최선을 다했으니 자책감을 갖지 말아라”라고 했지만,
주 아나운서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우리는 원팀이었다.
평가전 이후에는 주 2회 훈련 스케줄을 잡았다.
감독과 선수 6명이 각자 스케줄에 있기에
최대한 다 같이 운동을 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축구가 주는 매력에 빠진 선수들 스케줄에 변화를 줬다.
각자 사는 곳이 다르기에 2시간 이상 이동을 하는 선수도 있었으나
주 6일 훈련을 부르짖는다.
이 열정을 감독이 막을 수는 없다.
이제 선수들은 축구를 직접 보기까지 한다.
선수들에게 직접 경기를 관람하러 가거나
TV 중계로 경기를 보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경기를 보고 온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가 가져야 할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와중에 최은경 아나운서가 한 이야기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제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경기를 보니
솔샤르 감독 표정이 우리 감독님 같았어요.
우리가 열심히 해서 감독님 얼굴에서
솔샤르 감독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요.”
아나콘다 덕분에 축구가 더 즐겁고 행복해졌다.
대한민국 축구가 골때녀로 더 즐거워지고,
전국에 골때녀들이 더욱더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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