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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세계지식포럼 연설 (전문 + 영상)

by 두용이 2021.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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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국가대표 배구 선수 김연경입니다.

이제는 전 국가대표라고 해야겠군요.

세계지식포럼이라는 어쩌면 저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행사에 연사로 나서게 돼서 영광입니다.

더구나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님의

온라인 대담에 앞서서 제가 연설을 해야 해서 조금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서 있는 이 무대가 한국 배구의 성지, 장충체육관이어서

조금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지난 도쿄올림픽으로 저의 세 번의 올림픽 도전이 모두 끝났습니다.

이로써 16년에 걸친 국가대표로서의 저의 여정도 마감했습니다.

16년 전 저는 태극 마크를 달았을 때부터 저의 목표는

오직 올림픽 메달이었습니다.

세 번의 올림픽에서 두 번 4강에 올랐지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습니다.

메달 획득에 실패해서 아쉬움이 큽니다만 그래도 후회가 남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스포츠는 오직 결과로 보답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해서 저는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후 올림픽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에 지나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이번 올림픽을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이렇게 준비를 해서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저는 받아들일 자신이 있었고 후회 또한 남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전 모든 걸 쏟아냈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우리 여자 배구가 참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이 감사한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우리가 힘든 순간에도 하나가 되어 싸울 수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저희 여자 배구 팀에 왜 이렇게 큰 사랑을 주셨는지 사랑해봤습니다.

국민 여러분도 저나 저희 배구 팀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결과보다는

과정에 큰 감동을 느끼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공을 받아내려는 선수들의 처절한 몸짓,

공을 따라가는 간절한 눈빛,

득점에 성공했을 때나 실수했을 때나 변함없이 격려하고 감싸주는 동료애, 

이런 것 하나하나가 국민 여러분들에게 기쁨이 됐고 감동이 됐던 것

감동이 됐던 것 같습니다.

올림픽이 끝다고 저희 국가대표 팀의 경기가

큰 위로가 됐다는 말씀을 해준 팬들이 많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이것이 제가 배구를 통해서 깨달은 스포츠맨십의 핵심이자 올림픽 정신의 본질입니다.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할 것, 규칙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겨룰 것,

그리고 그 결과에 승복할 것, 

요즘 저 같은 젊은 세대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공정과 정의라고 하는데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몸에 익힐 수 있는 것은 바로 공정과 정의입니다.

공정과 정의에서도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구 선수로서 지금의 저도 사실은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잘하는 선수, 늘 주목받는 선수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때 1학년까지 전느 배구 선수로서 키가 크지 않았고

만년 후보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시작은 만년 후보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김연경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늘 후보 선수였기 때문에 저는 필사적으로 살 길을 찾았습니다.

경기에서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매일 고민했습니다.

그때 내린 결론은 제가 가진 조건으로도 팀에서 할 수 있는

포지션을 찾아 제대로 확실하게 해내는 선수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정된 리시브 실력을 키워서

수비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작고 왜소했던 제가 세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목표였습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훈련뿐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훈련을 열심히 했냐 하면

중학교 때 엄마가 저의 장래가 걱정돼서 감독님을 찾아왔을 때 

감독님께서 저희 엄마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연경이 어머니, 오전 훈련 끝나고 점심 먹잖아요?

그때 애들 쉬는 시간이 있어요.

새벽부터 훈련을 하는데다 점심까지 먹고 선수들이 그때 낮잠을 자요.

그런데 그때도 체육관에서 늘 공 튀기는 소리가 들려요.

누구인지 싶어서 가보면 늘 연경이예요.

저렇게 하는데 뭐라도 해내겠다 싶어요."

그때 저의 목표는 공이 마치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연습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소화했는데 고1 때부터 갑자기 키가 크기 시작했습니다.

고1 제 키가 170이었는데 2년 사이에 무려 22cm나 컸어요.

만년 후보 선수에서 갑자기 장신 공격수가 된 것이죠.

혹독한 수비 훈련을 해온 덕에 저는 수비력까지 갖춘 공격수가 됐습니다.

만약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키가 컸고,

공격수로만 기용이 됐다면 아마 저는 수비력은 형편없는 반쪽짜리 공격수가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벤치에 주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앉아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아, 공이 저렇게 들어올 때는 팔을 안쪽으로 더 뻗어서 받아올리면 되겠구나.

저런 식으로 빈틈이 생기면 공격 당할 때 속수무책이겠구나.

저렇게 공이 올라왔을 때 블로킹에 걸리지 않으려면 이렇게 치면 되겠구나.

벤치에서 경기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경기 분석을 했고

저라면 어떻게 하겠다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후보 선수 시절의 이 경험도 저에게는 소중한 자산이 됐습니다.

누구보다 경기를 잘 읽는 눈을 갖게 됐으니까요.

성공한 배구 선수 김연경은 이처럼 키 작은 만년 후보 선수 시절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고 수비가 뛰어난 공격수,

모두가 인정하는 저의 강점은 처음부터 제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돌아보면 그동안 저는 매순간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절망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며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키가 자라면서 내 약점이었던 신장이 강점으로 변하고

수비력과 공격력은 물론 경기 흐름까지 읽어내는 선수가 됐습니다.

배구 선수로서 저는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프로선수가 되자마자 신인상과 MVP를 거머쥐었고 팀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해외 진출도 했고,

해외 최고의 리그에서 MVP는 물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올림픽에서는 우승 팀이 아닌데도 올림픽 MVP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저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더 기쁜 것은 엄마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선수로서 저에게도 슬럼프가 있었고 부상으로 좌절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늘 배구를 처음 배울 때

엄마한테 배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때를 떠올립니다.

이제는 아주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지만 배구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손가락을 걸며 신나하던 기분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 약속 하나로 모든 일이 시작되었고,

엄마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든 시간을 버텨왓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엄마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엄마, 저 배구 하라고 허락하시기를 잘했죠?"

제가 비록 국가대표를 은퇴하지만 여전히 현역 배구 선수입니다.

김연경 배구는 항상 최고라는 소리를 듣도록 몸 관리 잘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배구에 대한 사랑이 이어질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더 흘러 은퇴 후에 무엇을 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려움 같은 건 없습니다.

배구가 저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으니까요.

해보자. 후회없이. 

 

 

https://youtu.be/VMrqz_JKTow?t=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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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바흐 연사님 김연경 선수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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