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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일번, 1984년 일본인이 그린 조선인 위안부 만화

by 두용이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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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일번, 1984년 일본인이 그린 조선인 위안부 만화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돌격일번(突撃一番, 1984)

 

주간 영점프 1984년 37호 수록 단편.

 

 

이 만화는 일본, 그리고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본래 정신대와 위안부는 별개의 단체지만, 

 

작중 '정신대'라고 표기한 것은 원문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임을 알림.)

 

 

 

제목인 돌격일번(突撃一番)은

2차대전 당시 일본 군부가 병사들에게 배포한

군용 콘돔의 이름이다.

대본영 입장에선 성기강 문란으로 인한

군인의 전투력 손실은

아주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를 막기위한 조치였다.

이 콘돔은 무료로 배포했으며,

'천황의 하사품'으로 불리었다.

각 부대에선 성교육 시간을 따로 만들어

병사들에게 성교 시 이 콘돔을 착용하고

귀두 끝에 군용 소독연고를 바르라고 교육했다.

다만 군에서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고

내부에 윤활유도 들어있지 않아 착용감이 매우 뻑뻑했다.

품질도 조악해서 잘 찢어졌다.

 

위안부들은 휴일에 이 콘돔들을 수거해서

다시 사용할수 있게끔 세척하고

소독약을 뿌리는 일도 해야만 했다.

어떤 위안부 생존자분들은

남자를 상대하는 것보다 이 일이 더 고역스러웠다고 한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진품의 경우 고무는

이미 다 경화되어 삭아버렸지만

수집가들 사이에선 개당 수만엔을 호가할 정도로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당시 이 콘돔을 생산했던

일본기업 리켄고무공업(理研護謨工業)은

훗날 오카모토에 인수합병된다.

 

 

1984년,

갓 데뷔한 신인 만화가였던 이시자카 케이는

영점프에 안온족(安穏族)이라는

옴니버스 시리즈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했다.

안온족은 전쟁, 폭력등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룬 단편들이었다. 

그녀는 작품의 소재로 쓰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정신대(挺身隊)에 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단순히 자원봉사 단체로 생각 해왔던

정신대의 실체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고 ,

우경화 되어가는 일본의 실태와

전쟁범죄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이 소재를 만화로 그리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나온 시기가

1980년대라는 점이다.

당시 위안부 문제는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조차도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맹점이었다.

따라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양심선언으로 말한

단편적 정보 밖에 없었으며

이런 내용을 다루는 곳도 일부 진보언론이 전부였고

대중들에게는 찌라시로 여겨졌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도 그녀는

직접 발로 뛰며 피해자들의 증언,

혹은 위안부들을 본 일본인들의 경험담을 취재하며

자료를 모았다.

그중에선 '조선인, 중국인 위안부'들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작가는 이렇게 작품 속에

조선인 소녀들의 이야기도 추가하게 됐다.

 

그렇게해서 그려진 '돌격일번'은

주간 영점프 1984년 37호에 실렸다. 

이 만화는 즉시 엄청난 혹평과 비방에 시달렸다. 

현재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정신대가

부상병 간호등의 근로지원을 하는

자원봉사단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당시에는 위안부 문제가 역사적 팩트보다는

대부분 생존자들의 주관적인 증언에 의존했던 터라,

그녀의 주장은 완전 '개소리'로 치부되었다.

막 성장하던 신인작가였던 이시자카 케이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지만

어째어째 넘어갔다.

그렇게 이 만화는 흑역사로 묻히는가 싶었다.

 

 

그럼에도 '돌격일번'은 안온족(安穏族) 3권 초판에

당당하게 실려 출판 되었다.

남성우월주의가 매우 강했던 일본에서는

당연히 안온족은 마이너한 소재였고,

일부 진보언론이나 사회운동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으나 히트치진 못했다.

그래도 여성들에게 어느정도 인기는 있었는지

총 7권까지 나왔다.

심지어 그녀의 스승인 '만신' 데즈카 오사무가

직접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다.

 

 

작가가 이 만화를 다시 세상에 내보내게 된 것은

1991년,

일본의 대표 일간지인 아사히 신문의 기자가

위안부 피해문제를 보도하면서부터였다.

한일국교가 정상화되고,

한국을 포함한 세계각지에서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자료들이 발견됐다.

이런 사회적 현상에 힘 입어 작가는

자신의 단편집인 '올바른 전쟁(正しい戦争, 1991)'에

이 작품을 포함시켜 다시 한번 출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 역시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본 최초, 그리고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의 실상을 그린 이 작품은

그렇게 또 다시 묻혀버렸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다시 한번 세상에 빛을 본다. 

 

이런 역사의 기념비와도 같은 작품을,

 

한국인도 아닌 가해자였던 일본인이

 

먼저 내놨다는 점 자체를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이 만화는 다시는 잊혀져선 안되기 때문이다.

 

 

今回紹介していただいた「八月の友人」と「突撃一番」は、84年に描いたもので、私が20代の時の作品です。「週刊ヤングジャンプ」に掲載されましたが、担当の編集者が意欲的な方で、不定期ですがページをくださったんです。当時は、バブルに向かって世の中が浮かれていた時代でした。反戦とかまじめなものは、ダサいし売れないけれど、学園物のラブコメが主流で、面白おかしい作品の中に混じって、ちょこっと入れてもらったという感じでしたね。ジャンプ系の漫画はどれも売れていて余裕があったから異色なものも載せて遊ばせてくれたのと、まだあの時代だったから掲載されたのだと思います。今なら大手の漫画雑誌には載らないですよ。

 

- 石坂啓

 

 

 

"「팔월의 친구」와 「돌격 일번」은 1984년에 그린 것으로, 제가 아직 20대였을 때의 작품입니다. 「주간 영 점프」에 게재되었습니다. 담당 편집자님이 의욕적으로 밀어주셔서 부정기 연재긴 했지만 페이지를 내어주셨죠. 당시에는 버블경제로 세상이 떠오르던 시대였습니다. 반전이나 진지하고 우울한 소재는 팔리지 않았어요. 그래도 학원물이나 러브 코미디 같은 인기있는 작품들 사이에 한두개 넣어 준다는 형식으로 허용 해주었습니다. 점프계열 잡지들은 언제나 잘 팔렸기 때문에 편집부에서도 여유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민감하거나 문제가 될만한 주제도 실을 수 있게 해준 것이죠. 순전히 '그 시대'였기 때문에 실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이라면 이런 작품은 큰 만화 잡지에 절대 실리지 못해요."

 

- 이시자카 케이의 「팔월의 친구」와 「돌격 일번」 소갯말

 

 

https://maybethere.tistory.com/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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